▲ 김진하 목사 / 본지 주필

2010 남아공월드컵이 열렸을 때 모든 국민들의 눈은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환호하기도 했고 절망하기도 했었다. 예선 2차전은 세계 최강이라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였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선수가 올린 프리킥이 문전에 서 있던 박주영 선수의 다리로 날라 오더니 다리를 맞히고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박주영 선수는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었다. 그냥 서 있었을 뿐인데 공이 스스로 한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골은 골이다. 자살골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골이 결승골이었다. 정말 억울해서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월드컵에서 무기력한 자살골의 주인공이 되다니 이건 골잡이 박주영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3차전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을 성공시킴으로 그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갔다. 프리킥을 성공시킨 후 그는 기도 세레모니를 보인 후에 하늘을 향해 분풀이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간의 고통과 국민에 대한 미안함을 단숨에 씻어버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내가 자살골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내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형 걱정하지 마! 라고 한 후배의 말”이었다고 했다. 자살골로 인해 경기에서 패배한 후에 “우리가 진 건 너 때문이야” 라고 공격을 해 댔다면 그 다음 경기에서 주눅 들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불평은 언제나 너 때문이라고 말할 때 생긴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 인생이 이렇듯 쪼그라지고, 친구를 잘못 만나서 나쁜 길로 빠졌으며, 남편을 잘못 만나 내 인생 피어보지도 못하고, 아내를 잘못 만나 내 인생 파멸되었다고 믿는다면 이 세상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남미 쪽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해외동포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동포들이 대단한 피해의식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이다. 한국을 떠난 것도 누군가 때문이었고,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도 다 남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인생에 자기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모두가 자기 주변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만도 많은 이민 교회 교인들을 만나봤는데 자기 교회 목사님을 칭찬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불만투성이다. 아니 그러면서 그 교회엔 왜 나가는 것일까?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서 왜 그 교회에서 장로를 하고 권사를 하고 성가대, 교사, 구역장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온통 불평불만뿐인 사람이 있다. 월급 주는 사장도 맘에 안 들고 과장도 계장도 심지어는 사무 보는 아가씨도 맘에 안 들고 수위아저씨도 청소하는 아줌마도 불만의 대상인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그 직장엔 왜 계속 다니는가?

사도 바울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구리장색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기억해 냈다. 그는 구리 세공업자로 돈을 많이 벌어 아마도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이름 알렉산더를 언급하며 “그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다”고 했고, “하나님이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너도 저를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바울이 남겼던 이 한마디로 미루어볼 때 그는 말끝마다 공격적이었고 툭하면 너 때문이라고 포문을 열었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괴로움을 주었던 것 같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하나님이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라”고 했을까?

지난해까지 본 교단 총무를 역임했던 목사가 수족처럼 부리던 옛 동료 목사를 찾아가 날카로운 흉기로 무차별 위해를 가하고 그 자신도 몸이 상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 총무는 재임시절 총회석상에서 가스총을 휘둘러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전력도 가지고 있다. 공공연히 떠도는 당시 상황의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너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이런 되돌릴 수 없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말을 조심하자 내 하기 편하다고 남의 염장 지르는 말 함부로 하지 말자. 내 속 편하겠다고 남의 속을 긁어 놓는다면 하늘의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시리라. 내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입 앞에 파숫군을 세워 말이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세심히 지켜야 할 것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자니라’ (약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