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연안 팔레스틴 출신으로 추측되며, 일명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회자되는 한 익명의 페니키아 여인은 정신과적 지병에 투병 중인 자기 딸의 치유를 위해 팔레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스틴 내륙으로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 힘든 육체적 행보를 했다.

예수께 자초지종을 고한 결과는 기대감과 현실의 극단적 대비로 인한 섭섭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의 답변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이어갔다. 그 소신은 유다종교지도자들에게 미풍양속을 헤치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 여인은 자신을 개와 동일시했다. 예수 당시 유다사회에서 개는 이방인을 지칭하는 '협정적 용어'였다. 이방인 선교에 대한 개념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이러한 이방 여인의 행보는 스캔들 자체였다고 간주해도 무리가 아니다.

단순히 모성애의 극치로만 폄하해서도 안 된다. 이 여인의 행동의 모체는 믿음이었다. 믿음은 인종적 갈등으로 인한 한계와 유다인의 '독점적 배타적 선민의식'도 극복했다.

그 당시에 여러 해안 도시들이 그렇듯이,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페니키아는 해양민족의 족적과 문화가 선명하게 낙인찍혀 그 영향력이 후대까지 방사능처럼 그 지역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복음에 대한 역풍이 창궐하는 이방 문화 속에서의 신앙고수와 성숙에는 배가된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이 여인이 신앙을 주식 시세의 ‘보합세’ 정도만 유지하는 것도 그런 환경 속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의 주 독자는 로마거주의 기독교공동체였다. 그들 중에는 많은 이방인 출신 신자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로마의 박해가 있었다. 이 박해 시에 신앙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은 순교였다. 이러한 순교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이 이방인 여인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예수는 페니키아 여인 내러티브를 통해 경직된 유다사회의 종교적 질서가 갖는 폐쇄성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예측 못한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복음적 생활에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고 협조적이지 않은 ‘삶의 정황’(Sitz im Leben) 가운데서 일구어낸 한 익명의 페니키아 여인 내러티브는 후기산업사회의 편리함과 안락함과 애매모호함이 체질화된 채, 더 많은 물질적 토대의 확보에 몰입해 때로는 복음을 애써 외면하고 때로는 신앙인이기를 잠정 보류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잔잔한 경성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