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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펄쩍 뛴 베드로

[Ku마가여행스케치/예수와 마실가기]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l승인2016.02.27l수정2018.11.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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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자 베드로는 펄쩍 뛴다. 그도 그럴 것이 베드로는 사회에서 대우받지 못하던 무지렁이로 살아오다가 어쩌다 출세의 동아줄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스승 예수의 이런 선언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러한 베드로의 놀람과 당황은 인지상정이고 인간이기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더더욱 이들에게 정신적 공황으로 다가온 것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죽으면 안 되는데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베드로는 결코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부활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그 말이 베드로의 귀에 와 닿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선언이 너무나 강렬해서 부활에 대한 언급은 귓구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수는 이러한 베드로의 반응을 사탄의 일이라고 규정하고 질책한다.

당시 유다인들의 메시아관에 의하면 메시아는 가시적 승리를 일구고 지배하는 메시아여야 했다. 즉 정치적 민족적 메시아관을 가졌다. 이런 메시아관 생성의 배경은 오랜 기간 외세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물리력으로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게 됐다.

유다는 B.C.587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황제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국권을 상실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단순히 성전 건물이 물리적으로 무너진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안에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여호와 임재의 상징인 성전에 대한 폐쇄되고 왜곡된 해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B.C.538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의 관용정책에 의해 제한된 범위의 자치권을 부여 받았으나, 국권을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식민지의 주인 만 그리스·로마로 교체됐지 국권회복이 요원한 상태에서 예수께서 성육신했고 제자들이 예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점적 배타적 선민사상에 오염된 신앙을 살아가고 있었다.

신앙인은 여러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신앙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신앙관이 얼마나 주님의 뜻에 합치되고 그 분 앞에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여러 가지 조건과 범주를 만들어 내며 스스로 소비적이고 의미 없는 피곤한 신앙의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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