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다리는 동남아 여행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여행 가이드의 별명이다. 그 별명에서 짐작하듯 그는 이상하리만큼 키가 작고 외소한 체격을 가진 친구였다. 피부는 검게 끄슬려 있었고,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키(140 ㎝ 정도)에 바싹 말라 풀죽도 제대로 못 얻어먹은 것처럼 애처롭기도 하고 가련하게도 보였다.

▲ 주필 김진하목사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출발하자 마이크를 잡은 그는 이내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의 여행가이드 숏 다리입니다.”라고 인사를 해 한바탕 우리를 웃겼다. 저런 친구가 무슨 여행 가이드를 하겠는가? 속으로 나도 모르게 그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는 한국은 커녕 배타고 40분이면 갈 수 있는 이웃 싱가폴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열 형제중 아홉 번 째로 태어났으나 생일도 모르고 알아야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생일이 없으니 여권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현대건설의 직원들을 찾아가 저녁마다 만나 서로 피차에 언어를 가르쳐 주면서 한국말을 배워 놀랄 정도로 유창하게 하는데 한글은 한 자도 모르는 까막 눈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친구가 우리를 감탄시킨 것은 한글 한 자도 모르면서 또한 비행기 한 번 타보지 못한 주제에 한국 사정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가이드로 먹고 살자니 직업이려니 하고 생각해보지만 한국의 이승만 초대대통령, 박정희대통령, 압구정동, 명동, 한강, 강남, 가로수 길 등… 이 친구가 입을 열 때마다 우린 감탄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적당한 유머가 섞여 있어 얼마나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팀을 안내하는 ‘나훈아’라는 별명을 가진 인도네시아 가이드가 있었다. 말은 숏 다리보다 유창했고, 한국 노래도 프로급으로 잘 불렀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닳고 닳은 냄새가 났다. 숏 다리는 달랐다. 10년이나 여행 가이드를 했다는데도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초보처럼 보였다. 아니 초보처럼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옳았을 것이다. 이틀이 지나 바탐 섬을 떠날 때에 우리는 숏 다리를 다시 쳐다 보아야만 했다. 우리 모두의 입에서는 저마다 ‘참 대단한 친구다!’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볼품없이 보여지는 외모에 낡고 헐렁한 바지춤에 집어넣어 입은 커다란 남방은 너무 커서 가슴에 있어야 할 주머니가 허리까지 처져 있었다. 허리는 그야말로 한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외모나 체구, 의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볼품은 없었지만 성실과 노력, 최선을 다하는 직업의식과 언제나 초보라는 자세로 성실을 다하는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 가치가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준 친구였다. 숏 다리를 평생에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런지 모르겠으나 이 친구는 언제까지나 내 뇌리 속에 살아서 기억할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숏 다리 같은 성실하고 진실한 친구들이 주변에서 수 없이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