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6.4 목 08:50

제28회/총각예수, 이혼상담

[Ku마가여행스케치/예수와 마실가기]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l승인2017.02.18l수정2018.11.29 15:3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혼인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은 경험이 전혀 없는 총각 예수께 한 율사 바리사이가 유다인의 이혼 문제에 관한 율법의 법리적 해석과 견해를 요구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유다인의 당면한 현안의 문제 중 하나인 이혼 문제에 관한 명확한 해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는 예수를 제거하기 위한 음흉한 정치·종교적 의도와 노림수가 내포되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혼 관련 사안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자녀와 문중에 첨예하고도 예민한 문제이다. 현대 목회 현장에서도 목회자들이 상담자의 입장에서 이혼관련 사안 내담자를 상담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주제 중 하나이다.

더더욱 미혼의 총각 목사에게 있어서 이혼상담은 피하고 싶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목회자의 이혼도 다반사로서 목회자의 이혼이라는 것이 뉴스거리·화제·가십(gossip)거리에서 제외되어, 이것이 고전이 되어버린 첨단의 후기산업사회에서 “죽어도 같이 못 살겠다”는 내담자에게 상담자인 목회자가 “죽을 때 까지 같이 살아라”는 권면은 내담자에게 목회자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정서가 뿌리깊게 박혀있고 그것은 우리의 의식·무의식에 치명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의 의식과 가치관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우리사회에서는 나이가 60·70세가 되어도 결혼하지 않은 독신은 문중이나 사회공동체에서 ‘어른’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애’ 취급을 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연장자들은 상대적 연소자들에게 “너희들이 인생을 알아! 알면 얼마나 알아!"라며 일단 일차적으로 나이로 한 번 찍어 눌러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당대 율법전문가인 율사 바리사이는 예수께 제기한 질문에 관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고 그릇된 질문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모종의 의도와 노림수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교수자에 대한 실력 테스트일수도 있고, 또 하나는 강의 시간이라는 공식적 자리에서 교수를 당황하도록해서 망신을 주자는 의도 일 수도 있다.

본인이 20여 년간 일반대학교와 신학대학교 강단에서 강의하는 과정에서 그런 질문을 한 학생이 몇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 한 학생의 질문 내용이 너무나 황당하고 가당치 않고 얼토당토 안 해서 잔인한 수준의 역질문을 통해 초토화시킨 기억이 있다.

이렇듯 질문의 수준과 해답의 수준은 함수관계가 있으며, 정당한 질문의 입력은 정당한 해답을 산출하는 법이다.

하여튼 이혼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일관적으로 ‘금지입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자·여자 창조 후 그들에게 준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매뉴얼은 ‘이혼금지 관련 사안’이었다.

그러므로 혼인에는 신중하고 침착하며 성숙한 사고와 자세가 필수다. 우리는 혼인하면 부수적·부대적 상황으로 새로운 인척관계도 추가되고 자녀도 출산하게 되므로, 좋든 싫든 양 배우자는 노력하고 고민하는 흔적을 양산하며, 정상적 부부관계의 유지와 복원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혼을 통한 재혼이 하나의 해답이 될 수도 있으나, 정답이 안 되는 것은 삼혼·사혼으로 이어져 삶의 개선과 진전 없이 양 배우자의 실존이 제자리 걸음으로 맴돌아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율사 바리사이의 이혼 관련 질문에 관한 모두발언에서 자기 견해를 피력하기에 앞서 모세의 견해를 인용한다. 모세의 ‘이혼증서발부’ 기록을 볼 때에 율법에서 이혼에 관한 길이 열려있고, 이혼관련사안이 느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예수는 율법에서 이혼의 가부여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2,000여 년 전 유다사회 당대 가장 심각한 약자의 상징인 여자라는 존재’의 인권에 관심했다. 즉 그것은 한 여자가 정당한 최소한의 법적 절차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배우자로부터 불법적으로 소박맞아 이혼 당했을 경우, 그 여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 보장을 해주어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지탄을 받지 않고, 새 미래에서 새 존재로 거듭나도록 하는데 관심했다.

만약 이혼증서를 발부 받지 못한 채, 소박·이혼 당하여 재혼하게 되면 십계명의 제6계명까지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리사이는 문자적 율법 수호에만 관심을 가졌지, 율법의 주 기능이 ‘사람을 살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내면에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자기 호주머니와 지갑을 불리기 위해 율법의 근본정신을 의도적으로 애써 외면했다.

가장 심각하고 문제되는 것은 무식한 것이 아니라, 관련사안에 대해 유식하면서도 본질이 아닌 제2차적인 것을 위해 자기 내면에 이미 자리 잡은 신념의 소리가 공명되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예수는 율사 바리사이에게 “화 있을진저”라는 선포를 계속 양산·재생한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인본  |  kuinbon@daum.net  |  등록번호 : 서울 아03494  |  등록일자 : 2014.12.22.  |  사업자등록번호: 197-18-00162
사업자계좌 : 신한은행 110-453-110726 (예금주 : 구인본합동헤럴드)  |   우)01800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6  |  대표전화 : 02-975-3900
합동헤럴드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합동헤럴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