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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빚진 자(롬 1:8-15)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대구중노회장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대구중노회장l승인2017.05.08l수정2017.05.0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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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대구중노회장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어떠한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프레임, 즉 틀과 기준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상위 프레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why’라는 당위성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하위 프레임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how, 즉 ‘어떻게’라는 방법론적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그가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사람인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할것인가?”, “돈과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방법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질문이 다른 것입니다.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면 수 천 만원의 돈이 들어도,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위 프레임의 사람들은 해야 할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할 것인가?”, “돈이 얼마나 드는가?” 하면서 방법론만 찾다가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확보되면 목숨을 걸고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성경의 역사 속에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드리면서 헌신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요, 사명임을 인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어떤 교훈, 가르침, 윤리적 삶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어서 좀더 고상한 삶을 살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정도를 복음적 삶으로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꼐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삶이 복음을 알고 복음을 소유한 자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를 잡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홀연히 임한 주님의 음성에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났던 사울의 삶은 생존하기 위해서 산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로마 방문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그 성도들을 만난 적도 없지만 그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을 갖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복음이 필요한가에 대한 당위성을 긴 편지로 쓰고 있습니다. 로마 방문을 여러 번 계획했지만 막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 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성도여러분! 예수 믿고 복음을 받은 자는 모두가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에 빚진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라(8)

8절,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게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누구에게 감사한다고 합니까? “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신을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셔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감사합니까?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고 합니다. 이미 로마 교회는 세워져있었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믿음의 소문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너희가 예수를 믿고 믿음생활을 잘 하는구나!’라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감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대단하구나! 그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맏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할 소명을 받았으므로 여러 번 로마를 방문하기 원했지만 그 길이 막혔습니다.

행 19: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만나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던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복음을 허락해주셔서 그 복음을 통해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세속의 도시 로마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로마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개인의 이익, 목표가 성취되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 로마 세계의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은 대부분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300년이 안되어서 황제를 숭배하던 로마 제국의 복음화됩니다.

그들은 서민 계층의 소수의 무리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은 세상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핍박,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지하의 카타콤으로 들어가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좋은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 믿음의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9절,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자신이 잘못된 것을 말한다면 하나님이 증인이 되시고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 사도바울은 로마 교회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까?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만 로마 교회에 이단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 편지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이 교회의 제도나 전통에 묶여있으면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래된 전통교회가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된 교회일수록 복음의 열정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점점 종교화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로서는 언제나 동의합니다. 맞습니다. 맞지요.

그러나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출입하며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점점 식어져갑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복음에 빚진 자의 삶이 아닙니다. 복음은 단지 처음의 구원 얻는 믿음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의 삶,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주님이 무엇이라고 책망하십니까?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사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 복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복음을 들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았다는 기쁨과 감격이 점점 사라져갑니다.

복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도합시다.” 하면 “목사님, 요즘 전도가 됩니까? 입으로 해서 됩니까? 삶으로 해야지.”합니다. 과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전도를 하는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가면 복음이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열방에 전파되는 것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이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네팔의 엄릿 목사님은 외국인 노동자로 돈을 벌기위해서 한국에 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경산의 외국인 근로자 선교센터를 통해서 복음을 받고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돈 버는 것을 포기하고 대구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졸업을 한 뒤 네팔로 돌아가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봉덕교회가 후원을 하고 저희 교회 권사님이 협력해서 아름다운 예배당을 세워 헌당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엄릿 목사님께서 짧은 시간 속에 얼마나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을 했는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힌두교가 지배하는 그 땅에 3억 8천개의 수많은 신들이 있는 곳에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네팔 선교의 현장을 보면서 개인과 교회, 한국 교회가 복음의 빚진 자의 삶을 살아야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조국 교회에 은혜를 주시고 축복해주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빚진 자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빚을 다 갚는 것입니다. 영적 빚진 자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우리만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가서 되겠습니까? 그런 생각이야말로 영적 이기주의가 아니겠습니까? 전도 폭발의 창시자인 제임스 케네디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95%가 죽을 때까지 단 한 명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2000년 이후 한국 교회는 성장동력이 멈추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사회현상으로 주일 학교의 학생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주일학교가 운영되지 못하는 교회가 50%가 넘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라면 어떻게 현실을 탓하며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 기쁨이 넘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은혜를 깨달아야 신령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누라 (11,12)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바울은 왜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까? 로마가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로마에 가고싶어 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믿음으로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였습니다. ‘신령한 은사’란 무엇입니까? ‘은사’는 고전 12:4-11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장언, 예언, 능력행함, 병고침, 통역 같은 은사가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교회를 방문해서 은사집회를 하기 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서 그들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신령한 은사란 문맥적으로 보면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은사가 무엇입니까? 은혜의 복음입니다. 로마 교회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복음을 함께 듣고 나눌 때 믿음이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 믿고 복으의 은혜를 체험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고 말씀을 듣고 싶어 하며 기도하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교회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복음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습관화가 되어갑니다. 점점 영혼이 메말라갑니다. 생명이 없이 껍데기만 왔다갔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면서도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교만의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말은 잘하는데 믿음에서 점점 떠나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눌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믿음이 든든해지면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갖게 됩니다.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믿음은 더욱 견고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고난, 시련, 환난이 많았습니까? 때로는 절망, 낙심도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힘에 지나도록 고난을 당해서 살 소망이 끊어졌다고도 했습니다.

(고후 1:8) 그러나 사도바울에게는 복음을 함께 나누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수많은 동역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있는데, 바울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놓았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뵈뵈 등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누었던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복음을 위한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눌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말이나 교리가 아닙니다. 복음이 우리의 심령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바울은 골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르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달아 하나님의 구원 백성이 되었다면 복음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성령께서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십니다. 엡 1:16-18, “우리 주 옛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합니다.

복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음의 눈이 열리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가 다시 복음을 듣고 그 은혜의 복음을 하께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의 복음을 하께 나누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자신이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대상자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빚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출석해도 누구에게도 전도해보지 못했다며 내가 받은 구원을 의심해야 합니다. 2017년 새생명 축제를 준비하면서 잃어버린 영혼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믿다가 낙심한 자, 아직도 믿지 않는 가족, 친구, 이웃들과 함께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은 예수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의 대상자를 위해서 전심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도 회복시키십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믿게 하실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감사하시고 그 은혜의 복음을 함께 나누는 복음의 빚진 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용규 목사/가창교회, 대구중노회장  hdhera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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