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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후퇴하지 맙시다”/히10:35∼39

박성순 목사/봉덕교회·대구중노회 박성순 목사/봉덕교회·대구중노회l승인2017.10.03l수정2017.10.0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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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순 목사/봉덕교회·대구중노회

히브리서가 기록된 것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사도들의 능력 있는 사역을 통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고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핍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순교를 당합니다. 로마 정부의 가혹한 박해가 계속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핍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복음 전파와 구령의 열정이 더해 가게 됩니다. 하지만 고난이 계속되니까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과거 자기들이 믿던 유대교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구주가 되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위대함과 주님의 탁월함을 얘기합니다.

그 분은 천사보다 모세보다 여호수아보다 아론보다 탁월하신 분으로 당신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단번에 죄에서 구원해 주신 분이시고 그 효력은 영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절대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예수 믿기가 힘들고 생명을 걸어야 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뎌나갈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견고한 믿음 위에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가 있습니다.

1.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비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들은 외롭고 힘든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받게 되면 마음이 위축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을 향해 본문은 성도들에게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우리를 담대하게 해 줍니다. 나도 모르게 어디서 이런 담대함이 생겼는지 이미 우리에게 담대함이 주어집니다. 신앙생활 처음 할 때는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감당해 나갈 까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막상 닥치니까 나도 모르게 담대함을 가지고 잘 극복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그러고 나면 내 안에 언제 그런 담대함이 있었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미 믿음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담대함을 주십니다. 그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곳곳에는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도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광야 생활을 했던가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의 마음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수아 1: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적과 이사를 행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자신감도, 지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내 힘과 내 능력을 의지할 때 우리는 담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붙잡을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미래를 보장하신다는 확신과 믿음 때문에 가능합니다. 고난 가운데 계시더라도 담대함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할까 말까 망설이고 쓸데없는 생각하며 헛된 세월을 보내는 사람보다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은 몸속에 병균이 침투하지 않아서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병균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 있기 때문에 건강합니다. 반면에 저항력을 상실하면 각종 병균에 감염되어 합병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신앙인의 믿음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시험이 와도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악과 싸워 이기고, 환경에 굴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담대함을 버리지 마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역사학자인 칼라일(Thomas Carlyle)은 “어떠한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백성에게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담대함과 용기가 있습니다. 다윗도 그런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외치기를 시편 31:24절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핍박과 환난이 닥쳤다 할지라도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상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담대한 자가 마지막에 가서 큰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가장 빨리 정상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용기 있는 자에게는 성공과 승리가 주어집니다. 두려움은 우리 인생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요한복음 16: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믿음 안에서 담대함입니다.

그 담대함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13:6절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도와주시는데,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죽기 밖에 더 하겠나? 죽으면 하나님이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담대히 나아갈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인내가 필요합니다.

현대는 스피드 시대입니다.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빠른 것이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차도 빨라야 합니다. 중국집에 자장면 배달도 빨라야 장사가 잘 됩니다. 식당에 가도 음식이 빨리 나와야 좋아합니다. 컴퓨터도 빨라야 합니다. 속도가 느리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아이티 산업이 발달 되었다는 것은 외국에 나가보면 실감을 합니다. 와이파이가 이렇게 잘 터지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외국 가면 호텔이나 가야 와이파이가 터집니다. 그것도 비밀번호 받아서 입력을 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인터넷을 하면 답답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빠른 것이 나쁜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화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빠르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에게 있어서 간직해야 할 소중한 품성 중에 하나는 인내입니다. 히브리서 10: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참을성이 없습니다. 기다릴 줄 모릅니다. 조금만 괴로워도 짜증을 냅니다. 쉽게 절망하고,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한국인이 장점도 많지만 한국인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참는 데 좀 약한 것 같습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조급성이 나타납니다. 밥도 빨리 먹고 술도 빨리 마시며 걸음도 빨리 걷습니다. 저녁식사의 경우 서양 사람들은 한 두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는 20분 안팎으로 먹어 치웁니다. 외국 식당을 가면 한국 사람들 좋아합니다. 빨리 먹고 일어서기 때문에 또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운전자에게도 참지 못하는 조급성이 나타납니다. 신호등이 바뀔 때 앞차가 조금만 늦게 출발을 해도 경적을 울리고 야단입니다. 이런 부분에 정말 잘 참아 주는 민족이 일본사람입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고 있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기다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을 누리는 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수한 연구진들이 한국에 있지 못하고 외국에 나가나는 이유가 오래 기다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예산을 투자했을 때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예산이 깎여 버립니다. 더 이상 한국에서 연구하기 힘들어서 외국으로 나가버리게 됩니다. 결국 연구 성과는 외국인이 누리게 됩니다. 일본이 노벨상을 타는 이유를 보니까 금방 성과를 내지 못해도 계속해서 인내하며 투자한 결과입니다.

크리미어 전쟁 당시 부상으로 다리를 잘라야 하는 병사가 있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그 병사에게 최대한 용기를 갖고 아픔을 참아야 된다고 말하자 그 병사는 막대기를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 병사는 막대기의 끝부분을 입으로 깨물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 막대기를 보니 그 끝부분이 거의 짓뭉개져 있었습니다. 감당하지 힘든 고통의 순간에 막대기를 물고 버티어내었던 것입니다.

고통이나 좌절로 아픔을 겪을 때 실패나 절망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가 물고 버티어야 할 막대기는 다름 아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보다 더 억울한 사건도, 십자가보다 더 쓰라린 아픔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12: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평화를 허락하십니다.

3.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신라시대 때의 화랑(花郞)들이 지켰던 세속오계(世俗五戒) 중에 󰡐임전무퇴(臨戰無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투에 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싸우다 물러가면 패하고 맙니다. 군인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진해야 승리합니다. 영적인 군사인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군병인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결코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됩니다.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8절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퇴보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은 전진하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믿음 생활에서는 늘 전진해야 합니다. 여기서 ‘물러간다’는 말은 ‘철회하다’ 혹은 ‘뒤로 끌다’라는 뜻입니다.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목적이나 계획을 쉽게 철회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계획을 세웠다면 반드시 그것을 끝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중도에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애굽에서 오랜 시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애굽 땅에서 해방된 그들이 가나안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조금만 어려우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노하게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탈 때 쓰러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제자리 서 있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넘어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전진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제자리에 멈추어서도 안 되고 더군다나 뒤로 후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오로지 전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전진하는 신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디모데전서 4:15절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퇴보하면 마귀가 기뻐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뒤로 물러가다보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신앙의 퇴보는 영육 간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올라가고 전진해야만 됩니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울 때, 주저앉고 싶을 때, 그때야말로 목숨 걸고 전진해야 될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의 전진만이 축복을 받는 중요한 비결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 헌금 생활, 모두가 전진이 있어야 합니다.

밤이 지나면 밝은 낮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사로운 봄이 오고 이 세상 지나가면 천국이 옵니다. 고난과 슬픔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겐 영원한 기쁨, 행복이 찾아옵니다. 주경학자 델리취는 “방패를 버린 병사는 이미 병사가 아닌 것처럼 믿음을 버린 자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야구선수들이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유가 많지만 야구 방망이를 약하게 잡고 있을 때 사고를 당하기 쉽다고 합니다. 야구 방망이를 약하게 잡고 공을 치면 손이 울립니다. 그러면 관절에 손상이 가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중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느슨하게 잡았다가도 공을 치는 순간 꼭 잡고 쳐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진리를 단단히 붙잡고 나아가야 인생의 홈런을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붙잡고 있으면 상처만 남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붙들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 큰 상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여! 신앙생활 조금 힘들다고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마시고 앞만 바로보고 주님만 바라보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성순 목사/봉덕교회·대구중노회  hdhera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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