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1.30 월 07:58

[발행인 논단] 개혁주체, 개혁대상 전락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l승인2018.10.31l수정2020.04.22 07:5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16세기의 유럽은 시대 흐름에 있어서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 르네상스(Renaissance)의 부흥기로 남부 이탈리아에서 문예부흥이 일어났다. 대중들의 사고형태가 피안(彼岸)보다는 차안(此岸)에 관심과 애착을 갖게 됐다.

당시 사회는 교권의 명령과 제도와 관습으로 인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적극적으로 현실화 하는데 촉매작용을 한 현상은 도시와 상업의 발달이었다.

16세기 초 바티칸은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오고 있던 교황청 채무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왜냐하면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전쟁 패전으로 인해 로마 교황청은 영적권위를 상실하여, 일반대중의 웃음거리가 되어, 교황이 제 아무리 많은 교서를 반포한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교황납치 사건이다. 1304년 4월 13일 베네딕트 11세 독살 사건 이후 그레고리 11세 까지 즉 1377년 1월 17일까지, 73년간 로마교황은 이탈리아 로마를 떠나 프랑스의 아비뇽에 유배당했다.

이때부터 로마교회는 해마다 유럽 각국에서부터 걷어 들인 수입이 급감했다. 아비뇽의 교황들은 모두 프랑스 출신들로서 프랑스의 추기경에 의해 선출됐다. 이 배후에는 프랑스 역대 왕들의 교묘한 조종의 결과 프랑스에서 징수되는 막대한 금액의 세금이 로마로 가지 않고, 프랑스에서 프랑스 왕과 교황 사이에서 적당하게 흥정되고 분배되어 착복됐다.

프랑스의 농토는 유럽에서 노른자위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십자군 전쟁 이후 흑사병의 유행은 농업생산의 감소를 가져왔기 때문에 교황청은 이중삼중으로 재정궁핍을 겪었다. 로마교회는 그런 형편 속에서 성베드로 성당을 짓게 됐다.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근 8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너무나 거창한 공사라 막대한 재정이 요구됐다. 그러나 수입은 감소됐는데 지출은 증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고위 성직자의 사치는 극에 달했다. 실크 옷은 보통이고 로마에서 재직 중인 주교·대주교·추기경뿐만 아니라 교황까지도 공공연하게 첩을 두고 살았을 정도다.

또한 바티칸 고위 성직자들은 거의 모두가 교황들의 친·인척들로 가득 메워졌다. 로마교회는 교황청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당시 프로렌스시의 고리대금업자인 메디치가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돈을 대출받았다. 그 돈은 16세기 전부터 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십 년이 경과하자 로마교황청은 원금은 커녕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메디치가는 대출금 환수가 불투명해지자 그 대신에 메디치가 출신을 교황으로 임명해 달라고 차선책을 제시한다. 교황청은 이에 동의해 궁여지책으로 메디치가 출신의 성직자를 교황으로 선출한다. 그가 바로 루터를 파문시켰던 레오10세였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 하는 일이란 교황청에 들어오는 돈을 자기 집 은행으로 송금하는 일 이었다. 더 나아가 재정적자 타개책으로 고안해 낸 것이 소위 ‘면죄부 판매’였다. 본래 면죄부 판매는 구제사업을 위한 용도였지만, 루터 때에 이르러서는 순전히 교황청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로마교황청은 하필이면 자기나라는 물론 프랑스를 제외하고 알프스 산 너머에 있는 독일에서 판매 되었을까? 그것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인들은 너무 약아 빠져서 면죄부를 사지 않기 때문이고 영국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고 그러다 보니 독일인들은 좀 미개한 편이고 순진하니까 얕잡아 본 것이다.

▲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이와 같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당시 루터는 오로지 자기의 구원 문제만을 해결하느라고 악전고투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심을 체험한 후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다가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됐다.

루터는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밝아진 영혼과 이성으로 로마교회의 교리와 제도를 보니 성경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을 항목별로 정리하다 보니까 95개 조항이 되었던 것이다. 평소 루터는 로마교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얼마나 타락하고 있었는지 깊이 알지 못했다. 다만 로마교회의 타락상이 자동적으로 노출된 것 뿐 이다.

루터 자신은 겸손한 수도사요 대학의 교수일 뿐 그는 스스로 개혁가가 되겠다고 야심을 품은 적도 없었거니와 더군다나 거대한 로마교황청을 대항해서 싸우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개혁가로 몰고 갔던 것이다. 개혁가로서 루터의 출발점은 자신의 철저한 회개에서 출발해 살을 찢고 뼈를 깎는 영혼의 아픔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교회에서는 성직매매가 공공연하게 성행했다. 주교를 임명할 때 주교가 관할하는 구역에서 징수되는 일 년간의 수입 전부를 일시불로 지불하는 자를 임명했다. 교회는 순수하고 거룩해야하며, 그것은 나 자신부터 그렇게 하려고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할 때에만 가능하다. 오늘 우리가 루터를 루터답게 추모하려면 그의 정신을 가감 없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500여 년 전 개혁의 주체 세력이 설립한 개신교는 현재 많은 후미진 부분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로 개혁교회는 무한궤도의 개혁의 삶을 살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라는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인본  |  kuinbon@daum.net  |  등록번호 : 서울 아03494  |  등록일자 : 2014.12.22.  |  사업자등록번호: 197-18-00162
사업자계좌 : 신한은행 110-453-110726 (예금주 : 구인본합동헤럴드)  |   우)01800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6  |  대표전화 : 02-975-3900
합동헤럴드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합동헤럴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