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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칼럼] 아픔도 복이다

주필 김진하 목사/평양노회 증경노회장·예수사랑교회 주필/김진하 목사l승인2018.11.27l수정2018.11.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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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김진하 목사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베버리 스미스는 특수한 병을 가진 소녀였다. 머리를 부딪쳐도 울지 않았고, 넘어져도, 손을 불에 데었어도 울지 않았다. 그 소녀가 울 때가 있었는데 오직 배고프거나 화가 났을 때 뿐 이었다. 의사들은 진단하기를 아마도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고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아이가 아픔을 느끼지 않음으로 울지 않는 것 때문에 사실 그 부모들은 몹시 힘들어 했다. 이렇게 보면 통증과 아픔을 알고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은혜인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때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아픔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들은 불필요한 듯 보이지만 우리에게 용기와 투지를 주고 인내와 노력할 수 있는 마음을 줄 뿐 아니라 더 밝은 내일의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유명한 뉴스 앵커인 데이비드 브린클리 씨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사람에게 던지는데 어떤 이는 원망해서 그 벽돌을 발로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더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벽돌을 주춧돌 삼아 집을 짓기 시작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고 그 고난을 다루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바다에서 잡은 살아있는 물고기를 수송하는 수산업자들에게서 들려지는 경험담이 있다. 바닷가 항구에서 모아진 활어 생선을 도시로 수송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커다란 물탱크에 신선한 바닷물을 채워 넣은 후에 신선한 생선들을 가득 채워 도시로 운반을 했는데 도시의 생선가게에서는 생선살이 맛이 없고 살이 물렁물렁해서 손님들의 불만을 산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고심하던 수송업자가 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살아있는 대구를 실어 운반할 때 그 탱크 속에 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은 것이었다. 대구와 메기는 조상 때부터 천적지간이었다. 메기는 쉴 새 없이 대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호시탐탐 공격할 기회를 찾고 있었기에 산대구 생선들은 메기를 피하느라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함으로 대구의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대구의 살이 탱탱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개개인 마다 아픔과 고통, 괴로움과 불리한 여건들의 메기가 있을 수 있다. 별로 환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나 교회 속에는 반갑지 않은 메기들이 끼어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메기는 나의 싱싱함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인 것이다.

여름에 양의 우릿간에서 양들끼리 뭉쳐서 질식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데 지혜로운 목동들은 그 양 우릿간에 성질 고약한 염소 한두 마리를 넣어둔다고 한다. 이 염소는 양들이 서로 모이거나 뭉치는 꼴을 못 보기 때문에 잠이 들 만 하면 와서 머리로 받아 흩어 놓는다고 한다. 양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대형 질식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때론 은혜로운 교회에 이해할 수 없는 염소 같은 사람이 들어와 헤집고 다니거든 이상하게 생각지 말자.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자 너무 편하고, 안일해서 깊은 잠에 빠질까봐 문제를 일으키고,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깨어 기도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에 그는 시편 56편을 기록했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노력했던 다윗이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삼키려고 종일 진치고 압제한다고 기록했다. 또한 원수가 종일 그를 삼키려 하고, 그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로 인해 두려워하는 날에는 그가 주를 의지하겠다고 말한다.

승승장구, 만사형통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 생각지 않을 때 태풍이 불어오고 안심하고 있을 때 비바람이 집을 무너뜨린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밥 먹듯 배신당하고 생명처럼 여겼던 제자에게 어이없이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일로 인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실까? 하며 원망할 때도 있다.

오죽하면 8절에서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했다. 내 눈물을 주님의 눈물 병에 담아본 사람 있는가? 시냇물처럼, 강수처럼 눈물을 쏟아본 적 있는가? 편안함과 안일함만 추구하는 현대의 교인들에게서 눈물 병에 담을 눈물이 과연 있기나 할까? 무차별적으로 다가오는 고통과 아픔 앞에서 그 고통이 가장하고 찾아온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축복이다.

주필/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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