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회지에서 우리 가정은 교회에서 바로 옆문을 사용하여 들어가는 꽤 넓은 사택에서 기거했다. 처음 사택이라고 소개를 받았을 때, 14년 동안 머물렀던 미국에서의 집이 생각났다. 2층으로 된 큰 집에 100여 평의 마당이 있었는데 쉴 새 없이 자라는 잔디를 깎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그 때 큰 집에 대한 모든 로망이 깨졌다고나 할까...그런데 부임하여 들어간 집이 2층 구조에 방이 여러 개 있고 더군다나 넓지는 않지만 화단까지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속도 모르고 좋아했다. 겨울이어서 앙상한 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고 그중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무화과나무도 있었다. 그런데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부터 우려했던 일이 시작됐다. 그 30평 남짓한 화단에는 온갖 잡초들과 나무들이 뒤엉켜 자라더니 이내 밀림처럼 빼곡히 덮여졌다. 그 좋아하는 무화과를 따먹을 때쯤에는 허리까지 차오른 잡풀들을 이리저리 밀어내고서야 겨우 그 달콤한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채로 여름을 지났고 또 겨울이 돌아와 모든 풀들이 사라진 뒤에야 그나마 좀 봐줄만한 화단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차에 올 해 여름이 올 때쯤, 그 화단에 일대 천지개벽이 시작됐다. 안수집사님 한 분이 화단을 연일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화단이지 잡초들과 돌멩이들의 전쟁터에 집사님이 선전포고를 하고 달려든 것이다.

퇴근을 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집사님은 70을 넘긴 연세에도 연일 몇 시간씩 구슬땀을 흘리며 잔뿌리와 자갈들을 파헤쳐 걷어냈다.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직장이라 몹시 지칠 법도 한데 점심때에도 퇴근 후에도 시간만 나면 달려오셔서 일을 하셨다. 사택에 살지만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일이다. 두 번의 허리수술로 엎드려 작업하는 자체가 불가하고 화단 일은 정말 하기가 싫다. 너무 힘드니까 흉내도 못 낸다.

사실, 화단이 엉망으로 되는 데에는 두 번 여름을 지나는 동안 아내와 이것저것 사다 심어 몇 몇 과일의 ‘키운 맛’을 즐긴 때문이기도 하다. 온갖 잡초들이 앞 다투어 자라는 곳에 토마토·깻잎·부추·상추·어성초 등을 심었으니 그 작은 화단이 어찌 화단으로 남아 있겠는가!

▲ 한은상 목사

집에 돌아오며 현관을 들어설 때, 한 번은 다 파내고 ‘물고기 수조를 만들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사님이 내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깊이 내린 수많은 뿌리들을 삽과 곡괭이로 파내고, 나무뿌리까지 톱으로 잘라내고, 잔 돌들을 일일이 골라내고 흙을 잘게 부쉈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으로 깊이 파묻었다.

그렇게 3주에 걸쳐 일이 거의 마무리 될 때쯤 곁에 서있던 나에게 집사님은 오래토록 여운이 남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자신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성경 읽는 시간이라고 하셨다. 그 집사님은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한 달에 한 번씩 성경 전체를 읽고 계셨다. 일 년이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을 말이다. 성경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많은 육체적 질병을 치유 받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해결되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셨다.

자신은 ‘성경말씀을 읽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기쁘다’고 감격의 눈물이 맺힌 눈망울로 말씀하셨는데, 정말 근래에 느껴보지 못한 감명을 받았고 뭉클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감명은 사실 내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말씀을 늘 전하고 말씀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기쁨과 감격이 아닌 의무감 때문에 붙들고 있을 때도 많고, 기쁨과 행복이 없이 무감각한 상태로 말씀을 대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살아간다고 하는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웠고, 어쩌면 주님은 집사님을 통해서 부족한 나를 ‘더 깊은 은혜 속으로 밀어 넣으시려고 이런 일을 보이셨구나’하는 생각에 주님께나 집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강하고 깊은 바위처럼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 한은상 목사

겉모습은 화려하고 말쑥하지만 온갖 쓸모없는 잔뿌리들과 돌멩이들, 버려야할 쓰레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 그런 모습으로는 그 어떠한 아름다운 화초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그 집사님이 파내버린 쓸모없는 것들이 화단에 가득했던 것처럼 나의 마음에도 마땅히 파내야 하고 버려야 하는 쓰레기들이 얼기설기 뒤범벅되어 자기 땅인 양 주인 노릇을 하며 장사진을 이루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 집사님이 파헤쳐 버린 돌멩이들과 잡초들은 내가 버려야할 마음속의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었고 그것을 담담한 이야기 속에 들려주신 집사님의 마음은 깨끗하고 정돈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뿌리내린 마음 밭, 주님의 사랑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 향기와 열매가 만발하는 마음 밭, 그런 밭을 만들고 싶다.

그 집사님은 곱게 가꾸어진 밭과 생명과 능력의 말씀, 그 둘을 다 내게 선물해 주셨다. 지긋지긋했던 긴긴 여름이 가고 겨울이 돌아와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게 정리하고 아름답게 단장할 마음의 화단을 들뜬 마음으로 그려본다. 

[약력]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졸업(82학번, 16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85회)

-서울 사랑의교회(故 옥한흠 목사) 부목사(10년)

-美 워싱턴중앙장로교회 부목사

-美 워싱턴주사랑교회 담임목사

-전주제일교회 담임목사

-현 주향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