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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봉생 목사 인생·목회 여정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구인본 편집국장l승인2019.05.11l수정2019.08.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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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봉생 목사

◆출생 

장봉생 목사는 1959년 8월 18일(호적:양력 10월 11일) 태풍 사라호가 몰아치던 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전방에서 직업군인이었던 부친이 경남 마산(국군병원)에서 6개월 파견근무 중 만삭의 몸으로 함께 한 모친의 수고로 세상에 보냄을 받게 됐다.

본래 장 목사의 부친 고향은 경남 통영시(당시 통영군) 용남면 장평리였다. 그곳은 인동 장 씨 집성촌으로 부친 5형제 가족일가가 모여 살고 있었다.

부친은 스무살 때 6.25에 참전해 군인의 길을 걸었는데, 주로 강원도 전방에 근무했고, 3남매(장 목사:둘째)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은 거의 군부대가 배경이 되었다. 군복무 중 홍천감리교회 주일예배에 동료들과 참석했던 부친은 얌전하면서도 똑똑해 보이는 주일학교 여교사를 마음에 두게 되었고, 용감한 프러포즈에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한다.

▲ 장봉생 목사(뒷줄 우측 둘째)

◆성장(1)

장 목사는 강원도 인제 화천 등을 거쳐 홍천 외가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유치원 교사였던 모친을 따라 무려 3년 동안 유치원을 다녔다.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기도와 찬송에 맞춰 장 목사는 아침을 맞이했다.

▲ 중앙대학교 졸업식:장봉생 목사(좌측 첫째)

훗날 외할머니는 네 딸을 모두 결혼시키고 외할아버지까지 소천하신 다음, 산과 밭은 팔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고, 넓은 집은 교회에 헌납했다. 마당은 홍천동부감리교회가 개척설립되었고, 집은 사택으로 사용되었으며, 외할머니는 쪽방에 사시면서 교회 종지기로 지내시다 천국에 가셨다.

▲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식:장봉생 목사(좌측 첫째)

장 목사 5인 가족은 부친의 마지막 근무지였던 경북 경주에 잠깐 살았다. 장 목사는 황성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곧 바로 경남 통영 용남국민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다. 한 시간을 넘게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 했던 농어촌 생활도 그리 길지 못했다.

▲ 결혼식 축사:고 김영삼 대통령

자녀교육을 위해 결심을 굳힌 모친의 요청으로 장 목사 가족은 통영시내(당시 충무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호주선교사들의 숙소(당시엔 성경학교 기숙사)였던 붉은 벽돌집에서 단칸방 생활이 시작됐다. 그 때 가까운 충무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통영국민학교 1학년으로 전학을 하게 됐다.

▲ 결혼식 주례:고 증경총회장 김현중 목사

◆성장(2)

통영초등학교 생활은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보인 모친 덕택에 계속 부회장, 회장으로 친구들을 섬길 기회를 갖게 됐다. 부모님은 의류사업을 하며 도서지역의 어려운 교회들을 돕는 일을 사명으로 여겼다.(어머니는 경남노회 여전도연합회 회장 역임). 충무교회 주일학교의 교육은 장 목사의 어린 신앙의 기초를 확고히 해주었다.

▲ 장봉생 목사(앞줄 좌측 셋째)

당시 장 목사를 지도했던 선생님들 중 최근 총회에서 활동하신 분들은 (고)박해석 장로, 조운옥 장로(주교련), 김창수 목사(전 총회총무), 이춘만 장로(전 총회회계), 양 원 장로(전 영남장로회장) 등 이다.

전교회장까지 지내며 통영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로 유학을 갔다. 진주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하숙 선배를 따라 고신측 진주중부교회에서 SFC 활동을 했다. 그리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면서 서울에서 신앙훈련이 시작됐다.

▲ 장봉생 목사

흑석중앙교회와 신반포교회에서 대학부 활동을 하면서, 캠퍼스에서는 SCM(기독학생연합회)에서 훈련을 받으며 회장으로 섬기기도 했다. 당시 사회적 격변기에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면서 <복음 민족 역사>에 대해 고민을 했던 시절이었다.

▲ 장봉생 목사

◆소명과 훈련

방송PD와 성경번역선교를 두고 진로를 고심하던 대학졸업반 때, 다음세대를 위한 목회 소명을 받았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1982년 입학, 군 현역복무 후 1986년 복학)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받게 되었고, 1989년에 M.Div 과정을 졸업했다(신대원 82회).

▲ 장봉생 목사

이 때 서울성산교회와 은석교회 그리고 부산초량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신대원 재학 중인 1987년에 창원 서머나교회(당시 성주교회)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故 김현중 목사(전 총회장)의 주례와 故 김영삼 대통령(당시 민주당 고문으로 가택연금이 해제되고 첫 외출)의 축사를 받았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부산초량교회(전도사, 강도사), 장전제일교회(부목사)를 거쳐 마산 창신고등학교 교목으로 섬기면서 마산문창교회 교육목사로 협력사역을 했다. 이 기간 동안 부산 고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신학(Th.M 수료)을 공부했다.

그 후 서울 충현교회 부목사로 사역지를 옮겨서 6년 동안 고등부, 대학부, 청년교구와 일반교구까지 두루 목회를 배울 수 있었다. 이 때 청소년과 젊은이 사역의 부흥을 경험했고, 여러 동지들과 함께 한국교회에 ‘청년사역’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는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목회세습 파동으로 사임을 하고, 강남구 수서에서 교회를 개척했고(수서은혜교회), 다시 이화여자대학교 다락방전도협회와 대학교회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 장봉생 목사

그러나 악화된 건강 회복을 위해 도미하여 LA 미주성산교회 부목사로 섬기면서 풀러신학대학원(D.Min 이수)에서 공부하던 중, 2001년 4월 첫 주일 서울 서대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부임하게 됐다. 이후 코헨신학대학원에서 코스와 논문을 끝내고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서대문교회와 연합사역

서대문교회에 부임하면서 <예배부흥, 거목양성, 세계선교> 3대 비전을 제시하고, 예배와 교육과 선교의 균형 잡힌 목회철학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949년에 설립된 서대문교회는 정통신앙과 열린 의식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건실한 교회였다. 장 목사는 제6대 담임목사로 19년째를 맞이했다. ‘더디 가도 함께 한다’는 목양정신으로 하나님의 가족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 장봉생 목사 내외

<더가족 서대문교회>는 ‘바로 그 교회’라는 의미의 <The 가족>이며, 질적으로 <더 좋은 가족> 양적으로 <더 많은 가족>을 의미한다. 개혁신학의 핵심인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교인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

▲ 서대문교회 예배

무엇보다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 10가지 기도제목과 성경의 주요구절 40개로 만든 <테필린>을 암송하며, 매년 6월은 한 달간 민족과 국가를 위한 기도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는 백두산과 한라산, 동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남해안 현장에 가서 기도하는 사역도 준비하고 있다.

▲ 장봉생 목사

전임자에 이어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교갱협>과 한목협을 통하여 연합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교동협을 조직하여 지역사회와 교회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서울지역노회협의회 대표회장을 지냈고, 금번에 전국영남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서울노회장을 지냈고, 총회총대로서 학생지도부장, 총회정책연구위원장, GMS부이사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총신운영이사,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 사회부(2년조), 재판국(1년조, 보선)에서 섬기고 있다.

장 목사는 “우리 교단(예장)은 신학과 규모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를 견인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다. 밖으로 사회를 향하여 복음적 메시지를 전하며, 이단 사이비세력에 대처해야 하는 동시에 안으로 노회를 통하여 지교회들이 바른 개혁신학과 신앙을 견지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 장봉생 목사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경-헌법-규칙-결의로 이어지는 정도를 지켜야 하고, 말씀과 기도의 강물이 지교회까지 충만하게 흘러가야 한다. 이를 위해 탁월한 정책의 수로를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전문성의 벽돌로 쌓아가야 한다.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재교육이 필요하고, 다음세대로 이어질 신앙교육 시스템을 견고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

장 목사의 부친은 경남 충무교회 장로 시무 중 병세가 악화되어 치료차 이주한 경기도 광명시 영광교회 협동장로로 섬기시다가 소천했다. 모친은 현재 영광교회 은퇴권사이고, 형은 영광교회 장로로 은퇴하고, 직장 사정으로 부산 부전교회에 출석하며 봉사하고 있다. 여동생은 마산 문창교회 권사로 섬기며, 매제 역시 안수집사로(6월 장로장립 예정) 섬기고 있다.

▲ 장봉생 목사

아내는 손상률 목사(서울 후암교회 원로목사)의 장녀이고, 두 처남이 각각 경기도 김포와 캐나다 밴쿠버에서 목회하고 있으며, 아래 동서(처제)는 GMS 일본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아들은 부산 고신대학교 의학과에 재학 중 현역으로 군복무 중이고, 딸은 숙명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장봉생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2천여 명 서대문가족이 있습니다. 오늘도 신축한 비전센터와 개축한 교회당에서는 방과 후 교실과 다솔학원 그리고 서울기독학교(대안학교)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다 우리 아이들입니다!”

▲ 장봉생 목사

<경력>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B.A.)

서대문교회 담임목사(현)

서울기독학교 교장(현)

전국영남지역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현)

교회갱신협의회 공동회장(현)

총신대 운영이사(현)

총신대신대원동창회 부회장(현)

총회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현)

총회 재판국원(현)

총회 학생지도부장(역)

총회 정책연구위원장(역).

구인본 편집국장  aki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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