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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성경으로 도배한 집

김진하 목사/평양노회 증경노회장·예수사랑교회·총신대 운영이사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19.07.20l수정2019.07.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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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우리나라 최초로 순교한 선교사는 누구였을까? 영국의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로 26살에 순교했다. 그는 원래 중국 선교를 위해 아시아에 온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불행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한 아내가 중국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혹시 따뜻한 남쪽으로 가면 아내를 위한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싶어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아내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선교사 사표까지 내게 되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방황하던 그는 조선에 기독교인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선에 대한 선교 열정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는 1865년 9월에는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3개월간 조선 땅에 머물기도 하였다.

1860년대에는 조선 땅에 천주교인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더니 1866년 정월에는 전국에 천주교 탄압령이 내려지면서 대대적인 천주교 숙청이 이루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약 8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학살되었는데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세워진 절두산에서 목이 잘려 죽었고 자하문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이때 조선에 머물고 있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에서 9명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그해 9월 프랑스 함대가 선교사들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일으킨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1866년 초부터 시작된 천주교도들에 대한 숙청과 탄압으로 조선의 분위기는 암울하던 때였다. 그해 8월 여름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들은 토마스 선교사는 통역관 자격으로 그 배에 승선하였다. 그는 배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육지에 내려 가지고온 중국어 성경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기로 인해 불어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셔먼호가 양각도에 좌초되고 말았다.

이것을 본 조선의 군관들이 불붙은 나룻배를 물에 흘려보내 셔먼호를 공격했고, 불붙은 셔먼호를 탈출한 사람들은 익사하거나, 헤엄쳐 강가로 나왔지만 기다리고 있던 조선 군관들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당하게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을 치려는 군관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성경을 건넨 후, 피를 쏟으며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영국에서부터 복음을 전하려고 조선 땅에 왔던 26살의 영국 젊은이는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되었다.

물론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선교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기적적이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한문 성경을 받은 사람은 최치량이라는 11살 소년이었다. 그는 토마스로부터 건네받은 3권의 쪽 복음 성경이

금서라는 사실을 알고 덜컥 겁이 났다. 그는 그 성경을 평양의 영문주사인 박영식에게 건넸다. 질 좋은 한지로 만들어진 성경은 한쪽 단면에만 인쇄되어 있었고, 묶음은 실이 잘 풀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성경은 마침 도배지가 필요한 박영식의 집에 고급 도배지가 되었다. 박영식은 벽뿐 아니라 방바닥과 천장까지 성경으로 도배했다. 질 좋은 종이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방을 온통 성경으로 도배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소돔, 한국의 사악한 도성이라는 별명을 지녔던 평양에 세계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한 집이 탄생하게 되었다. 박영식은 이 집에 살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집은 나중에 그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던 최치량이 매입하여 주막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여관과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사건들이 전개된다.

평양 복음화의 열정을 가지고 평양에 도착한 마펫 사무엘(마포삼열)선교사와 한석진 조사가 바로 그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때는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지 30년쯤 된 1893년 이었다. 그들은 성경으로 도배된 방에 묵으면서 주인인 최치량을 불러 자초지종을 묻게 되었고 최치량은 자신이 순교한 토마스에게 받아 전달했던 성경으로 박영식이 도배한 집을 훗날 자신이 매입하여 주막을 삼은 것과, 그곳에 평양을 방문한 선교사가 머물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집을 예배처로 드렸고 이듬해인 1894년 1월 8일에는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시작한 예배처소는 근처 널다리 골에 있는 집 한 채를 사들여 교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탄생된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후에 판동, 평양중앙, 장대재...를 거쳐 장대현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교회에서는 1907년 1월 14~15일에 시작된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원지가 되어 한국 교회 부흥의 횃불을 밝힌 것이다.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성경을 도배지로 사용한 집이 장대현교회를 출발시킨 널다리골교회가 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는 너무도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일어난 축복된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와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토마스를 죽인 병졸 박춘권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박춘권은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죽어가면서까지 전해주려 했을까 궁금해져서 동료들 몰래 그 현장으로 다시 가서 흩어진 성경을 모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성경을 읽던 중 예수를 믿었고 훗날 영주교회의 영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조카 이영태도 그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했고 그는 평양숭실대학을 졸업한 후에 선교사인 레이놀즈의 조교가 되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한글 성경 2/3를 번역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한 젊은 선교사의 처절한 순교로부터 도미노처럼 번져가는 신비의 사건들은 130년 짧은 복음 전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놀라 경악케 하는 한국의 복음 역사를 기록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복음을 전하겠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던 어린 선교사를 왜 죽게 내 버려두었느냐고?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은 당장 알 수 없다. 그걸 미리 알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고 감격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쓰임 받을 뿐이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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