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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향기였나 악취였나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총신대운영이사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19.09.30l수정2019.10.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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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어느 목사님이 단골로 다니시던 이발소가 문을 닫아버렸다.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던 중에 어느 여집사님이 말해 주었다. “목사님 이번엔 미용실에 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좀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요즘 남자들도 미용실에 많이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사님도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순서를 기다려 의자에 앉자 미용사가 물었다.

“어떤 헤어스타일을 원하시나요?”

“이발하는데 헤어스타일이 따로 필요한가요?”

“그럼요 헤어스타일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커트도 있고, 퍼머도 있고, 컬러링도 있습니다.”

목사님은 그 용어들 중에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커트뿐이었다.

“그럼 커트로 해 주세요”

그랬더니 미용사가 또 묻는 것이었다.

“그럼 어떤 커트를 원하십니까?”

“커트에도 뭐가 있습니까?”

“그럼요, 롱 커트, 쇼트커트 미디엄 커트가 있지요.”

목사님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쇼트커트 밖에 없어서

“쇼트커트로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미용사는 알아서 멋지게 커트를 해 주었다.

주일날 목사님은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변신 했으니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목사님이 교회에 들어서자 교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귀순 용사가 되셨네요”

목사님은 허허 웃으시며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많이 자랐다.

다시 그 미용실을 찾은 목사님은 쇼트커트를 해서 창피를 당했으니 이번에는 롱 커트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돌아온 주일날 목사님이 교회에 들어서자 교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이번에는 완전 벙거지 왕자가 되셨네요”

그 이후부터 목사님은 미용실에 갈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알아서 해 주세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중요하다. 요즘은 스타일 시대이다. 헤어스타일, 드레스 스타일, 구두 스타일...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잔득 담긴 스타일을 고집한다. 언젠가 강호동이라는 연예인은 인디언 추장 같은 머리를 하고 나온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빗으로 단정히 빗어 머리카락이 하나라도 흐트러지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고정되는 것이 신사의 멋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침대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머리가 뒤죽박죽되어 있는 것이 멋이다. 그런가 하면 머리 아랫부분을 바리캉으로 삐뚤삐뚤하게 밀고 위의 머리는 긴 머리로 경계를 이루어 마치 깎다 만 듯한 머리 모양이 또 유행이다.

헤어스타일은 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지만 라이프스타일은 한 사람의 운명을 만든다. 헤어스타일은 미용실의 미용사가 만들어주지만 라이프스타일은 철저히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 헤어스타일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라이프스타일은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요구하신다. 크리스천이라면 크리스천다운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승복을 입고 머리를 깎은 스님이 대낮에 갈비 집에서 갈비를 뜯는다 해도 사람들은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신부나 수녀가 덕스럽지 못한 일을 했다 해도 별반 상관치 않는다. 그런데 왜 TV 뉴스나, 신문에 기독교인 이름이 오르내리면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에 비판적일까? 그 이유는 크리스천다운 스타일을 기대했던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말썽만 피우고 부모의 재산을 말아먹는 자식은 잘못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철석같이 믿었고, 모범적이던 맏아들이 그런 일을 한다면 부모는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이 되고 만다. 그 만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15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그리스도의 향기니...” 라고 했다. 벌은 10리 밖에서도 꽃의 향기를 맡고 찾아온다. 그 향기가 너무도 좋으면 벌집으로 돌아가 동료 벌들에게 꿀 있는 곳을 알리려고 무진 노력을 한다. 향기 대신 악취가 난다면 벌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먼저 안다.

향을 모아놓은 화장품을 향수(퍼퓸)라고 한다. 그 향수를 몸에 뿌리는 이유는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멋진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몸에 향내가 나게 한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성도를 가리켜 그리스도를 알리는 향기라고 했다. 그 냄새만 맡아도 그 냄새 속에서 예수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향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향기를 전했는가? 아니면 악취를 풍겼는가? 내 삶의 스타일에 따라 나에게서 풍겨지는 냄새가 향기도 될 수 있고, 악취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 따라 변하는 것이 스타일이라지만 시대가 100번 변한다 해도 변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면 크리스천의 삶의 스타일일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자식, 동료, 선배, 후배...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면 좋지 않겠는가?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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