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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언제나 기적은 불타는 갈망이 만든다”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20.07.01l수정2020.07.0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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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동물 중에 늑대는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한번 공격 목표를 정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입에 문 것은 이빨이 부러져도 놓지 않는다. 이렇게 사납고 호전적인 늑대도 사냥의 성공률은 1/20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스무 번 정도 사냥에 나서면 열아홉 번은 실패하고 한번 정도 성공하는 확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 나선다. 성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늑대처럼 되어야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고 무서운 집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즈 장군은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열 한 척의 배에 700명의 병사를 태웠다. 이렇게 적은 군사로 멕시코를 정복한다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르테즈 장군은 비장한 각오로 멕시코의 해안 베라크루즈에 도착했다. 누가 봐도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코르테즈 장군은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타고 온 배 열 한척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군사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다.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싸워서 이기는 것뿐이다. 지면 죽는다. 승리가 생명이다. 병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웠다. 말할 것도 없이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세상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은 당할 도리가 없다.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출발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법이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을 누가 당하겠는가?

시내 광야 한 복판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400여 년을 종살이 한 히브리의 노예들과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고 늘 남의 등을 쳐서 살아가는 아말렉 군사들 간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당연히 예리한 무기로 무장하고, 전쟁에 능한 아말렉이 히브리 노예들을 이겼어야 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전쟁에 나선 노예들이 칼과 창으로 무장한 아말렉을 섬멸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하나님이 도우신 전쟁이었지만 아말렉 군사들은 심심풀이로 시작한 전쟁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생사가 달린 전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가족과 민족의 생명이 달려있었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가야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열두 해를 하혈을 하며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있었다. 용하다는 의원 다 찾아다니고, 치료받느라 모든 재산을 날려버린 가련한 여인이었다. 피가 멎지 않으니 불결했고, 악취를 풍겼고 율법적으로 부정해서 어느 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죽는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 예수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곁에 다가와 은밀하게 옷자락을 만졌던 것이다.

사실 이 단순한 행동은 부정한 행위였고, 당시 율법으로 판단한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마땅한 행동이었다. 여자가 남자 옷을 만진 것도 부정했지만 몸에 피를 흘리는 사람은 부정하므로 누구와도 접촉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날 이 여인의 결단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가기 전 3일간 금식을 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며 발걸음을 옮겼던 것처럼... 이 여인도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 선택 밖에는 더 방법이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이 여인의 혈루병마가 순간 깨끗이 치료된 것이었다. 이 여인이 치료받은 것을 두고 여러 말이 있을 수 있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이다” “믿음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적은 불타는 갈망이 만든다는 것이다. 처절함이 기적을 불러온다. 절박함이 있어야 주님을 움직일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이 있어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는 듯 한 절박함으로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려는 성도가 있는가? 주님의 눈길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도가 있는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했다. 불붙는 열정으로 천국을 점령하기를 바란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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