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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 1:6~10

박용규 목사/증경대구중노회장, 총회실행위원, 가창교회 박용규 목사l승인2020.12.02l수정2021.04.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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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규 목사

오늘 우리가 처한 영적인 현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믿지 않는 자들도 교회를 염려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입니까?" 라고 되물었을 때,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피상적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다수의 사람들은 무감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에게 익숙한 가르침을 전부로 여기면서 성경이 가르치고 말씀하시는 복음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특히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에 간다"는 개인 구원에만 집착하는 편협한 신앙은 온전한 복음을 아는 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행동하면서 무슨 예수를 믿는다고 그래~" 그러나 반대말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예수를 안 믿지만 천당이 있다면 저런 사람이 가야해~" 사실 이런 말들은 기독교 신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것이지 윤리적으로 ‘착하냐, 선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예수를 잘 믿으면 현세에서 복을 받고, 질병을 치유 받고 마음과 정신에 위안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복신앙으로 대변되는 번영복음은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다른 복음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달콤한 말을 듣기 위해서 교회에 나옵니다. 자신이 잘 되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의 현실은 물량주의적이고 실용주의 가치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곳에 옳고 바른 진리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쉽게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든 시스템,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대형교회를 선호합니다. 그런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따르는 믿음 위에 서 있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코로나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보았지 않습니까? 신천지 이만희 교주를 따르는 자들이 수십만 명입니다. 이러한 이단들은 성경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성경과 전혀 상관없는 집단인 것입니다. 예수를 이야기 하지만 그러나 예수와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신자가 바라는 것을 꿈꾸고 원하는 바를 소유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복음의 중심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셨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편지하면서 자신이 전해주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변질, 왜곡 시킨 것에 대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다른 서신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어조로 "내가 너희에게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복음은 무엇이겠습니까?

1) 값싼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6절)

갈라디아서 1장 6절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 사도가 1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고난을 무릎 쓰고 세운 교회입니다. 다수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큰 기쁨과 성령 충만을 경험했습니다.(행 13:48)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 ‘다른 복음’에 미혹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으로 미혹시킨 자들은 열성적인 유대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 위에 무엇인가를 덧붙인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 외에 율법주의자들의 새로운 가르침에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총체적 위기상황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떠나"는 헬라어로 ‘메타티데미’란 단어인데, "바꾸다, 자리를 옳기다, 변절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가 전해준 복음의 진리를 값싼 복음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신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크고 놀라운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완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 성취하신 것을 값없이 죄인들에게 은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성경은 복음을 설명할 때 복음이 복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 간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했다, 부르셨다" 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왜 복음인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값싼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나버렸습니다. 그 결과, 다른 복음, 값싼 복음을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의 주도권을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값없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복음이 값싼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셨다는 것과 그 영원하고 영광된 자리에 세우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다른 복음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받은 복음의 진리를 값싼 복음으로 대치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도 불러주신 것은 값없이 된 것이지만 결코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나 값싼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절은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헛되이"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객관적인 이유 없이" 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믿는지 무엇을 믿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완전성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성경이 말하는 세상의 가치나 거짓된 능력을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목적 그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헛되이 믿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구원받고 예수를 믿는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고 성취했느냐?에 더 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를 믿는 것을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거나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것을 성도들의 보편적 삶이나 목표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바꾸어 버릴 때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만들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행복이, 자랑이며,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단순히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 간다"는 교리로 알고 있습니다.

복음은 교리가 아닙니다. 교리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세울 수 있지만 복음이 교리화 되면 아무런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요, 능력이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최고의 축복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변질되고 왜곡된 다른 복음, 값싼 복음은 실용주의라는 세상 가치에 따라서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를 믿습니까. "주일이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이것저것 막힘없이 형통해질 거야", "고난과 시련 없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거야", "믿음으로 사업했으니 반드시 잘 되게 하실거야" 등 이런 마음 태도가 여러분 속에 있다면 값싼 복음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믿음, 순종이라는 종교적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는가" 에는 무관심하면서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자신이 무엇을 얻어내겠다"는 것은 값싼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출입한지 20년이 지나도 하나님을 알아가는 영적 변화와 성숙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세상의 가치에 물들어있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시고 구원받으셨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복음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의 답변은 여러분들이 하십시오. 이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면 값싼 복음을 쫓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변질된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7절)

바울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노라" 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 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복음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많은데 진정한 복음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믿지만 할례를 받고, 복음을 믿지만 유대교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가 전한 복음은 누구든지, 이방인들이라도 예수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 시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은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변하다"는 헬라어로 "메타스트레포"로 "메타" 라는 접두어는 강조 형입니다. "스트레포"는 "강렬하게 뒤집어진다"는 뜻 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거짓선생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완전히 뒤집어서 180도 다른 복음으로 변질,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단호하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즉,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은 곧 자신에게 사도권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에서 ‘받는다’는 동사가 현재명령형입니다. 저주가 계속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 왜곡된 복음, 변질된 복음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나 파괴적인 것이며, 결국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나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부활하사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사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시며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게 하시며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소유한 자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인생의 어떤 계획과 뜻도 나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20세기 최고의 설교자였던 영국의 로이드 존즈(L.Jones) 목사는 유럽사회와 북미에 나타난 복음의 변질을 간파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은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심이고, 그것이 흔들리면 그리스도인의 정의도 흔들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조국 교회의 가장 안타까운 현실의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가끔 중요한 원인은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의 변질입니다. 저마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제는 무엇이 참된 성경적 복음인지 간파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다른 복음, 소위 번영복음, 치유복음, 신비주의 복음, 도덕주의 복음은 오랫동안 우리 가운데 널리 유포되어져서 우리 속에도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교의 주제는 성공, 축복, 자기계발, 내적인 치유, 응답 받는 비결, 자신의 만족을 채워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하는 것들입니다. 예수, 십자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치고 있지만, 결국 어디로 결론이 맺어집니까? 이 땅에서의 축복, 소원성취, 번영, 형통 등 끊임없이 인간의 욕망을 자주하며 신비한 것을 추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배의 중심도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 안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소원과 만족을 자주하는 감성적 예배가 중요한 가치가 되어져서 예배가 점점 엔터테이먼트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를 지적하거나 경고하지 않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잘된 것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입시킵니다. 변조된 복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도 무관심 합니다. 자신이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종교적 기쁨만 가지면 됩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사도들이 생명을 걸고 선포했던 복음의 진리는 인간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낭만적인 생각이나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입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져서 현실 속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요 3:16)

성경이 가르키는 참된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삶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적 삶에서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깨트리십니다. 그래야 질그릇이 깨어져서 예수의 복음을 드러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신약성경, 여러 서신들을 보세요. 예수 믿고 행복해지거나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믿고 문제가 풀린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난 자마다 문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 것인가? 세상의 거짓된 위협, 다른 복음, 왜곡되고 변질된 복음에 굴복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실패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제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나를 부르신 그 하나님이 오늘도 내 손을 침 삼킬 동안도 놓고 있지 않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닫는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소한 60세는 넘어서야 합니다. 무엇을 아는 것입니까? ‘아~! 이 세상은 거짓되고 이 세상의 성공, 번영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 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인 줄을 하나씩 깨달아갈 때, 복음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진리를 좀 더 빨리 깨닫을 때, 자유와 기쁨,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심령 깊숙한 곳에 넘칠 때 어떤 고백이 터져 나오겠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21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박용규 목사  pyongg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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