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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김진하 목사/前 정년연구위원장·서북협상임회장·총동창회수석부회장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21.10.13l수정2021.10.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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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제인 크로스비 라는 여자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태어난 지 6주 만에 시력을 잃어버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불행한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녀는 세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입술을 열어 희망을 노래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 여자의 가슴에는 항상 샘솟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비록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그의 가슴 속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을 정리하여 일생동안 8천여 편의 찬송시를 썼다. 그러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비록 내가 볼 수 없지만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축복을 나는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볼 수 없다고 눈물짓거나 한숨을 쉬지 않으련다. 내 육신의 눈은 감겨져 있으나 아버지께서 나를 맡으셨네”

우리는 이 여인이 지은 이 찬송을 즐겨 부른다.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보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그 외에도 유명한 찬송가를 만들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마땅히 버림받은 인생을 저주하며 악담을 퍼부었어야 마땅할 여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고 그 여인을 일으켜 세워주셨다. 하나님의 은총은 선인에게만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이나 버림받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은 늘 함께 하신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형 가인은 들판에서 동생 가인을 쳐 죽인다. 세상에 오직 단 둘인 형제인데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의 제사만 받으셨다는 것이 살인의 이유였다.

동생 아벨을 죽인 후 가인은 넓디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몸뚱아리 하나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살인자 가인에게도 살길을 허락해 주셨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가인을 해하지 못하도록 표를 남겨 주셨다.

(창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끝까지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다. 동생을 죽인 살인마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세상 물정 모르고 세상을 따라 나가는 아들을 보고 있는 아버지는 답답했다. 세상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니 돈만 있으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분배받아 세상으로 나갔다가 가진 돈 모두 털리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 식사 때가 되면 짐승새끼에게도 먹을 것이 나오는 법인데 돈 떨어져 거지 신세가 된 아들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뭄이 들어 돼지우릿간의 돼지가 먹는 먹이를 조금씩 주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이 아들은 문득 고향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면목 없지만 아버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버지를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할까? 가지고 나갔던 돈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할까?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혀왔다.

사람들은 원래 답답하고 숨이 막혀 올 때가 있다. 노력해도 안 되고 힘써도 소용없을 때 그 답답함은 더해 오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길이 없고, 해답이 나오지 않을 때 역시 답답해진다. 사람들은 본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답답한 사람들이다. 답답하기에 가슴을 치고 답답하기에 소리를 지르고 통곡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면목 없어 얼굴을 들지 못하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아버지는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단숨에 달려와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 고 하며 울먹였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먼저 보시지 않으신다. 우리의 잘못이나 죄를 먼저 찾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일단 안아주시고, 일으켜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다. 허물과 죄로 얼룩져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신다 해도 우리를 책하시기 보다는 먼저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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