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지갑도 잃어버리고, 다음 날은 핸드폰도 잊어버리고 또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평생에 이런 일을 차례로 당하기는 처음이다.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나이 탓으로 여겼다. 며칠 전 이웃집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안에 재활용 물품을 잔뜩 가지고 탔다. 너무 많아 보였다.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재활용품을 가지고 내릴 때까지 문 열림 버튼을 계속 눌러주었다. 아주머니는 가벼운 것들을 먼저 버리러 갔다. 가다가 뒤를 쳐다보더니 묻는다. 사장님, 오늘이 재활용품 버리는 날 맞지요? 아니, 목요일이잖아요. 근데 오늘이 수요일 아닌가요? 그랬더니 자기가 요일을 착각했다며 웃는다. 그러더니 그 많은 재활용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보다 젊어 보였다. 나이 탓일까. 남의 일이 아닌가 싶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잊어버렸다. 욕조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칠 뻔하였다. 나이 탓일까. 여태껏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잊어버리고, 욕조에서 발을 씻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고. 예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갈수록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잔소리는 듣기 싫다. 젊었을 때는 그나마 들어주었다. 관계의 기술이라 여겼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겨주는 이들이 갈수록 좋다. 불편한 이들은 만나기 싫다. 편한 사람들이 좋다. 예전엔 불편한 분들도 잘 만났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 싫다.

나이 탓일까. 음식도 그렇다. 편한 음식이 좋다. 부드러운 음식이 좋다. 고가의 음식이라도 딱딱하면 싫다. 뷔페 음식은 피곤하다. 차려진 음식이 좋다. 나이 탓일까. TV도 별 재미가 없다. 흥미를 끌고 재미나게 보고 싶은 영화나 프로그램도 줄어든다. 나이 탓일까. 며칠 후면 월드컵이 개최된다. 그때는 좀 다를지 모르겠다. 이것까지 재미없어진다면 이것 또한 나이 탓일까. 세상이 갈수록 재미없다. 설교도 짧은 게 좋다. 예배 시간도 마찬가지다. 나이 탓일까. 편한 게 좋고, 복잡한 것은 싫다. 그래도 찬양은 좋다. 나이가 들면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새로워진다. 내 속사람은 어떤 상태일까? 겉사람은 확실히 낡아지고 있다. 젊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 옥광석 목사(부노회장·동도교회), 윤하중 목사(평강교회), 안창운 목사(영천교회), 양정택 목사(증경노회장·송우교회), 좌측부터

노인복지 전문 목회를 하는 친구가 그런다. 노인에게 네 가지 고통이 있다고. 빈고, 병고, 고고, 무의고. 가난해지고, 병들고, 외롭고, 할 일이 없어지는 고통. 이 네 가지 고통에 빠지지 않으려면 노후를 잘 준비하란다. 배우자와 친하게 지내란다. 남편은 아내를 여왕처럼 모시란다. 친한 친구 서너 명과 규칙적으로 만나란다.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두란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라고. 이 네 가지는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갑도 잃어버리고, 핸드폰도 잊어버리고,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도.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요일도 착각하고. 그렇게 겉사람은 낡아진다. 쇠약해진다.

하지만 속사람은 달라야한다. 강건해져야 한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하나님의 은혜만은 잃어버리지 말자.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야 한다. 이것조차 잃어버리면 삶은 허무다. ‘호모볼라’ 인생의 덫 없음을 표현한 말이다. 인생은 거품이다. 부·명예·미모의 행방이 다 거품이며 덫 없다. 지금껏 내가 의지하던 거품이 다 사라지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기억나고, 남아있다면 그 인생은 승리요, 성공이다. 그가 속사람이 강건한 사람이다. 코로나로 내 인생의 모든 거품이 사라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만은 사라지지 말기를. 그것이 내 남은 인생의 또 다른 큰 목표다. 다른 것은 잃어도 하나님의 은혜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떠 올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는 방법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속사람이여 강건하시라. 속사람에게 나이 탓하기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