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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별것 아닌 것의 무게

김진하 목사/샬롬부흥운동본부장·총신대신대원총동창회장·서북협대표회장, 제107회 총회준비위원장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22.11.23l수정2022.11.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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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열 세 살의 바비 힐 이라는 소년은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상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느 날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유럽지역의 미 공군 사령관인 리처드 린제이 장군에게 편지를 썼다. “장군님 제가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린제이 장군은 이 소년의 이야기를 방송국에 보냈고 방송을 들은 유럽 사람들은 40만 불 어치의 약품을 모아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제공한 비행기 편에 소년 바비 힐 까지 동승시켜 아프리카로 보내었던 것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그 약품들을 받아들고 말하기를 “어린 소년이 이런 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라며 감격해 했다고 한다. 때로 우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무게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벳세다 들녘에 모인 5천명의 배고픈 군중들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하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양식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한 결 같이 비관적이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소가 외진 곳이고, 양식을 살만한 가게도 없었고, 5천명을 먹일 만한 양식을 살 돈도 없다는 푸념들뿐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는 제자는 평소에는 뒷전에 앉아 별 말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군중 속을 누비고 다니며 먹을 만한 것은 없을까 찾다가 어떤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도시락으로 들고 온 것을 발견하고 그 아이를 설득한 끝에 이 보잘 것 없는 도시락을 기증 받아 예수님 앞에 바친 것이었다. 이 조그만 헌신, 보잘 것 없는 양식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무게가 5천명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의 씨앗이 된 것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반항적인 아이에게 한 번 더 말했던 훈계가 새 사람을 만들고, 파탄 직전의 부부 관계에 한 번 더 내민 손이 새 가정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 번 더 보낸 편지나 한 번 더 던진 미소 한 번 더 걸어본 전화 한 번 더 기다려 본 실패자에 대한 가능성의 기대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없다. 별 것 아닌 것의 무게는 멈추었던 자리에서 한 발 자국을 다시 내딛게 하는 헌신의 무게가 된다.

인도에서 선교했던 테레사 수녀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함께 지내는 그 별거 아닌 나날들이 쌓여 인류의 가슴을 울리는 위대한 사람이 만들어진 것이다. 찰스 굿 이어 라는 청년은 심히도 가난했었다. 그는 날마다 더러운 고무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매일 매일의 벌 것 아닌 것 같은 나날들이 10년이 쌓인 후에 고무로 된 타이어를 개발하게 되었고 굳 이어(Goodyear)라는 유명한 타이어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타이어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날들의 무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선 오래 전에 Proxy Pickets(대리시위) 라는 기업이 생겼다. 시간당 일당을 받으면서 데모를 대신해 주는 기업으로 데모용 피켓과 현판도 임대해 준다. 시위라는 것은 원래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직접 나가서 내리쬐는 햇볕 밑에서 죽도록 고생도 해 보고길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겪어보고 눈비가 내리거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온 몸이 얼어붙는 고통도 체험해 보고 목청이 터져라고 소리도 질러보고 시간을 희생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거리에 나가 맴도는 것이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당을 주고 대리시위자를 세워 목적만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그 시위의 무게는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실 때에 200kg이 넘는 십자가의 무게로 인해 여러 차례 쓰러지고 넘어지셨다고 했다. 그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언덕을 올라갔었는데 만일 예수께서 “이보게 기왕에 십자가를 졌으니 그 십자가에 달리는 것도 자네가 대신해 줄 수는 없겠나?” 라고 부탁을 했다면 구세주로 오신 예수의 생애는 우스꽝스러운 만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희생을 거치지 않고 쌓아올린 공적은 화려해 보일지라도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겠지만 생명을 건 희생은 별것 아닌 것일지라도 고귀한 무게를 지니게 될 것이다. 적당히 눈속임으로 충성스러움을 위장하고 헌신과 희생의 순간에 대리시위 하듯 나는 빠지고 약간의 헌금이나 보상으로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적당한 헌금이나 봉투가 아니라 우리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진한 땀방울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땀방울이 비록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 무게는 세상 어떤 저울로도 달수 없는 무게일 것이다.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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