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밥상을 눈썹과 나란히 올려 든다”는 뜻의 ‘거안제미(擧案齊眉)’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 후한 때 양홍과 맹씨녀의 이야기로 어렵고 힘든 시절일수록 부부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이야기다. 양홍은 긴 세월 동안 세상의 모진 풍파를 함께 이겨낼 성실한 동반자를 찾고 있었다. 동네 노처녀로 살던 맹씨녀를 만나게 되고 마음에 들어 결혼하였다. 얼마 후 양홍은 경사에 갔다가 황제와 권문세가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고 분개하여 조정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이것으로 황제의 노여움을 산 양홍은 아내와 함께 먼 타향으로 도망가 이름을 숨기고 날품팔이를 하며 그 지역 대갓집의 방 한 칸을 세내어 살았다.

어느 날 저녁 집주인이 그들의 사는 방 앞을 지나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양홍의 아내가 소박한 저녁식사를 차린 소반을 눈썹에 닿도록 높이 받들고 들어와 남편 앞에 공손히 내려놓으며 식사를 권하였다. 이 기이안 광경은 매일 이어졌다. 집주인은 지독히 가난한 사내가 이토록 정중하게 존중받고 있으니 필시 어진 선비라고 생각하였다. 이후로 집주인은 양홍 부부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 일은 온 고을에 알려졌고 양홍은 뛰어난 선비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며 부인 역시 부덕을 갖춘 현숙한 여인으로 큰 칭송을 받았다. 《리더의 옥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젊은 목사가 큰 교회에 부임하였다. 경험이 적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특히 당회 운영이 힘들었단다. 그런 그가 당회를 잘 운영하는 비결이 있었단다. 자신을 존중하는 세 분 장로님 때문이었다고. 판사 장로님, 대기업 사장 장로님, 총장 장로님 이 세 분이 자신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인사도, 태도도, 말투도 존경 자체였다고, 이 세 분 장로님 덕분에 목회의 어려움이 와도 그 사랑으로 잘 참고 견딜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존경으로 대하는 분들 때문에 힘을 얻고 목회를 감당하고 있다.

▲ 2023년 설날(1월 22일 주일) 목양실에서. 옥광석 목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존경은 사라지고 무례함의 극치를 걷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특히 가정에서 존경의 문화가 새롭게 꽃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한마디로 존경심이다. 사랑하면 존경한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으면 무례하게 행한다. 무례함은 미움의 표시다. 세상의 말투가 너무 거칠다. 나라가 잘 살수록 말과 태도가 더 거친 것 같다. 왜 이럴까? 어디서 존경을 찾아볼 수 있을까?

몇 해 전이다.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새로 이사를 온 초등학생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하였다. 순간 당황하였다.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후 친구가 되었다. 장례의 꿈이 의사가 되는 것이라 했다. 이유를 물으니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 솔직한 말에 크게 웃은 적도 있다. 아쉽게도 그 학생은 이사했다. 이사를 떠날 때도 예전처럼 90도 인사를 하였다. 잊을 수 없는 아파트 입주민 학생이다. 잊지 못할 이웃이다. 어른이라고 존중하는 그 학생을 잊을 수 없다. 나 역시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였고 존댓말을 사용하였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보다 성숙한 사회가 없다. 그런 사회를 꿈꾼다. 존중하는 문화가 다시 대한민국 사회와 가정과 교회에 넘쳐나면 얼마나 좋을까. 존중해주는 사람이 좋다. 너무 좋다. 존중의 가치가 2023년 대한민국 사회의 키워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거안제미 고사처럼 서로를 극진히 존중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맹씨녀를 닮은 이들이 대한민국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많아지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