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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내가 옛날에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나?"

[Ku마태여행스케치/갈릴리예수를 찾아]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l승인2024.06.26l수정2024.06.2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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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장 오정호 목사, 합동헤럴드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좌측부터)

현 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한 토막의 이야기가 있다. <한 교회의 예배 시간이다. 목사는 열정적인 설교를 하고 있었고 교우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이때 예수께서 슬그머니 뒷자리에 앉아 설교를 듣기 시작 했다. 한참 설교를 듣던 예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가 옛날에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나?">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성경이 가지 않은 곳 까지 굳이 개척자 정신을 발휘하지 말라는 것 이며, 성경이 멈춘 곳을 추월하지 말라는 말이다. 예수를 당황하게 하는 강단을 지양하고 성경에 충실한 강단을 지향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성경 해석의 첫 발걸음은 그 당시 제일차 독자들에게 그 말씀은 무슨 의미였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의 원활한 파악을 위해서는 당시 사회에 대한 역사적 문화사적 고찰이 필수적이다.
 

▲ 1988년 4월, 호주 시드니에서 구인본 목사(합동헤럴드 대표/발행인)

예수의 가르침이 가장 많이 수록된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의 배경은 팔레스틴에서 로마강점기를 살고 있었던 히브리 민족이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 총독이 해안지방에 상주 하였으나 사실상 직접통치가 아니라, A.D.70년 이전까지 분봉왕이라는 대리인을 괴뢰정권의 우두머리로 내세운 간접통치였다. 로마제국의 모든 점령지에서 직접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로마제국 내에서도 별 비중이 없었던 변방에 불과했던 작은 점령지인 팔레스틴에서만 유독 직접통치가 불가했던 이유는 그들만의 독특한 여호와신앙 때문이었다. 로마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책봉 된 헤롯은 탁월한 정치적 수완의 사람이었다. 헤롯은 로마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 주었고, 팔레스틴을 군사적으로 로마를 보호 해주는 울타리와 방파제로 삼았다. 이에 대한 대가로 그는 로마로부터 자치권과 엄청난 재량권을 부여 받았다.
 

▲ 1988년 4월, 호주 시드니에서 구인본 목사(합동헤럴드 대표/발행인)

헤롯은 모친이 아랍인으로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그는 이것을 타개하고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 증개축 사업을 벌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리모델링에 해당 된다. 이 사업은 헤롯 정부에 대해 비판적 이었던 사람들이 헤롯정부의 합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 그는 많은 토목․ 건축 사업을 통해 도시화 작업을 추진했다. 이런 도시화 작업은 백성들의 세금에 의하여 집행 되었으므로 납세자인 팔레스틴 민초들의 희생은 커져만 같다.

헤롯은 상당히 폭압적인 정치가였다. 그는 정통성이 결여된 지도자였으므로 정권 찬탈 음모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장모까지도 죽였다. 예수 탄생 당시의 베들레헴 영유아 학살사건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그는 일부다처였으며 성전에서 절도행위를 했으며 다윗 무덤을 도굴 하였다. 그는 자기가 죽으면 백성들이 통곡을 안 할 것을 염려하여, 죽으면서 한 가정 당 1명씩 살해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돼지가 되는 게 낫다.”고 하였다. 당시의 경제적 상황은 헤롯일가가 팔레스틴 부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었다. 실업률이 높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리의 사채를 갚지 못해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소작농에서 노예로 전락 할 수밖에 없는 질곡의 삶을 살고 있었다.

▲ 합동헤럴드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좌측부터)

◆구인본 목사는 대구에서 3대째 장로 가정에서 어머니의 서원기도를 통해 독자로 출생했으며, 대구동부교회(故 김덕신 목사)와 대구범어교회(장영일 원로목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총신대 신학과와 동 신학대학원(85회) · 일반대학원(Th.M, Ph.D과정)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일반대학원에서는 원우회장으로 섬기며 다양한 인맥과 소통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 1학년 때는 <헤세드>라는 일렉트릭 보컬그룹(지도교수:홍치모)을 창단해 제1회 극동방송 C.C.M 대회에 출전하는 등 <경배와찬양> 사역을 했다. 3학년 때는 <총신낙도선교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아 여름방학 때 소록도 등 전남 일대의 오지의 섬을 중심으로 낙도 선교를 했다. 4학년 때는 학부생활관 사생회장으로 섬겼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시절에는 제1호 동아리인 <기독교사상연구회>를 창립해 폭 넓은 독서토론회를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 총신대 학부 총동창회에서는 후원이사와 친교위원장을 맡아 제1종합관 건립 기금 모금을 위한 실무적인 사역을 했다.

구인본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 시절, 서울 광화문 내수동교회 대학부(오정호 교육전도사)와 서초동 사랑의교회 대학부(이수만 교육전도사)에서 제자훈련 사역의 지평을 체험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성도교회(수도노회)에서 강도사 시절을 보냈으며, 목사 안수 후, 명지대학교 · 과학기술대학교 · 총회신학원 등에서 교수 사역을 했다. 노회적으로는 목사안수를 받은 대구중노회 기관목사로 섬기고 있다.

구인본 목사는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교양 있는 사회를 추구한다. 현재 민은홍 사모와 1남(구준모)과 함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신대 근처에 살고 있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uinb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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