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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광석 칼럼] 본이 되는 삶

옥광석 목사/총회목양아카데미 위원·동도교회·천마산기도원 원장 옥광석 목사l승인2024.05.23l수정2024.05.2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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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1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총회 충성상을 수상한 동도교회 옥광석 목사(우측), 총회장 오정호 목사(좌측)

한국유리공업 창설자인 최태섭 장로. 그는 해방 당시에 만주에서 사업을 벌이고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지방에 공산당원들이 들어와서 인민재판을 하였다. 기업체 사장들을 비롯해 부자들을 전부 운동장에 모아놓고는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쭉 둘러서서 인민재판을 열었다. 공산당 재판 책임자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거기 있는 군중들이 죽여야 한다고 하면 그냥 처형하는 식이다. 최태섭 장로는 한국 사람으로서 공장을 운영하다가 그만 이 인민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때 본인은 ‘난 이제 죽었구나. 내 인생이 끝났구나’ 했었단다.
 

▲ 새로남교회에서 열린 총신대학교 ‘총동문의 날’ 한마음 잔치에서 옥광석 목사

드디어 최태섭 장로의 차례가 왔다. 책임자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군중들이 다 조용한 가운데, 한 중국 사람이 ”이분은 우리 집 경제 형편이 정말 어려워서 아들을 학교에도 못 보내고 병원에서 고생할 때 도와준 분입니다. 그러니 그분은 살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단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그분 참 좋은 분이라고 거들었단다. 그렇게 최태섭 장로는 살아났다. 최태섭 장로는 해방 후에 남한에 와서 사업을 했다. 하지만 절대 사업 성공 자체를 목적에 두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사원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 사업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고 한다. 본이 되는 삶이다.
 

▲ 옥광석 목사l

목사의 큰아들로 태어난 슈바이처도 마찬가지다. 목사 생활을 하다가 가난하고 병든 아프리카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이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어 서부 아프리카, 지금의 가봉으로 가서 평생 이들을 의술로 섬겼다. 그러다가 그의 나이 90세에 평소 그가 사랑하던 음악가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1965년 랑바레네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돕고 헌신한 삶이 행복했다고 고백하면서 생을 마무리한 것이다. 얼마나 멋진 삶인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이런 죽음을 귀하게 보셨겠는가?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세상 떠나기 얼마 전에 프랑스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 나에게 맡겨진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혹시 당신이 미처 이 편지를 받아보기 전에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질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도 나를 위해서 기뻐해 주십시오. 나는 30세에 시작하여 60년 동안 불행한 환자들을 위해 끝까지 봉사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본이 되는 삶이다.
 

▲ 제61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 참석한 평양제일노회원

미국의 땅콩 박사로 잘 알려진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님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다. 최초의 흑인 농학 박사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죽어가는 남부 농업을 살린 위대한 흑인 박사다. 독실한 기독인으로 땅콩을 연구 개발하여 죽어가는 남부의 농업 경제를 살렸다. 그는 봉사 자체가 인생 최고의 행복이요, 보람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평생 봉사하는 심정으로 살았다. 얼마나 검소했는지 옥수수 가지를 넥타이 삼아 삼고 강의하였다. 얼마 안 되는 교수 봉급을 모아서 흑인 학생들 장학금으로 지급하였다. 본이 되는 삶이다.
 

▲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사진: 마상구 목사, 교하사랑의교회 담임)

심방을 갔다. 최근에 미망인이 된 어느 성도님 댁을 심방 하였다. 두 달 전에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를 하신다. 남편은 대단한 분이시다. 의료계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분이시다. 그런데 이 남편께서 아침마다 근처 대학 운동장을 돌면서 운동하였단다. 운동을 마친 후에는 운동장 근처에서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주었단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은 이분이 학교 청소부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분이 대단한 직업을 가진 분이요, 또한 기독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이후 동네 분들이 이분을 그렇게 존경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크게 받았다.

우리 기독인의 삶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 말없이 섬기고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존재 말이다, 강도 만나 신음하는 이를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주고 섬겨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게 본이 되어 산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기독인들이 모두 존경받을 것 같다. 자기 맡은 일에 조용히 최선을 다하고, 이웃을 위해 말없이 소리소문없이 섬기고 봉사하는 기독인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도 밝아질 것이고, 교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질 것이다. 어디서나 본이 되는 기독인으로 살자.

옥광석 목사  pearlkso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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