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8.13 목 11:39

[주필 칼럼] 가라지 때문에 고민하는가

냉정하게 생각할 것은 혹시 내가 가라지는 아닌지 김진하 목사 / 본지 주필l승인2015.12.08l수정2015.12.20 20:1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리 하베이 오스왈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세 명이나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살다 헤어졌고 폭력을 자주 사용하는 새아버지와도 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세 번째 아버지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오스왈드는 불행한 환경 속에서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군대에 갔지만 중간에 쫓겨나고 말았다.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가졌지만 오래지 않아 그 여자에게서도 버림받고 말았다. 그는 늘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을 비하하였고 직업도 구질구질한 일만 걸렸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자신의 불행을 늘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 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우편으로 주문하여 12달러 95센트짜리 총과 4달러짜리 망원렌즈를 사 가지고 텍사스 주, 달라스 시의 학교 물자 보급 창고에 숨어들어갔다. 때마침 달라스 시를 방문하여 시가행진을 하고 있던 죤 F 케네디 대통령을 향해 총기를 발사해 대통령을 서거케 했다.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살해한 목적이 정치적이냐? 아니면 개인적이냐?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이냐? 자발적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오스왈드라는 가라지 같은 인간의 엉뚱한 행동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젊은 대통령을 어이없이 쓰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 가라지라는 용어는 농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볍씨나 알곡씨앗을 심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방해군인 피나 잡초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그것을 가라지라고 불렀다. 마태복음13장은 천국비유장인데 주님은 천국을 비유로 설명하시다가 밭에서 자라난 불청객 가라지의 비유를 들려주셨다. 가라지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주인이 심지 않았는데도 자라는 것이 가라지다. 그런가 하면 가라지는 언제나 알곡보다도 더 크게, 더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가라지가 성하면 알곡이 위협을 받게 되고 농사의 소출에 영향을 준다. 때로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애꿎게도 알곡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을 때는 조심해서 살펴야 한다.

그런데 가라지는 농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우리네 인생에도 가라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잠간 방심하는 사이에 무수히 자라나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가라지가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거나 모두를 전율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라지는 알곡보다 키도 크고, 성장 속도도 빠르지만 농사꾼들은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

얼마 전 재판에서 시국사범으로 12년 형을 선고 받았던 좌파 골수분자 국회의원이었던 이SK 같은 사람이 바로 자유 대한민국의 위험천만한 가라지이다. 열변을 토하며 자신은 억울하며 결코 민족 반역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할지라도 국민 대다수는 그를 이 민족의 가라지라고 여기고 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도 가라지가 자라났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 땅을 떠났고 그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었다. 그의 아내 사라가 경수가 끊어지고, 아이를 낳을 소망이 없자 자기의 몸종 하갈을 씨받이로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그 일을 강행했다. 이 부부는 어떤 방법으로든 아들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 모두에게 가라지였다. 아이를 잉태한 것을 느끼자 주인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태어난 이스마엘은 후에 사라를 통해서 태어난 이삭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가라지 역할을 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쫒겨 났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스마엘은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원한 가라지로 남아 지금도 계속 가시처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갈등은 아브라함의 책임이다. 아브라함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 후손에게 영원한 가라지를 남겨놓게 했던 것이다.

여러분의 목회나 삶에 가라지가 있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 가라지는 내가 뽑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한다. 예수께서도 가라지를 가만 두라고 말씀하셨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태13:29) 내가 내 힘으로 제거하려고 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아진다. 어차피 가라지가 없는 인생은 없다. 다만 가라지를 줄이는 것이 은혜다. 알곡도 가라지도 추수 때까지 기다리면 나중에는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다.

목회하다 보면 가라지 같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그때 그 가라지를 몽땅 뽑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라지는 그냥 놔두고 존재를 인정하고 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년 말이 되고 신년을 맞이할 때쯤 되면 목회자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사람들을 세워 교회성장에 탄력을 받고 목회를 도울 중책을 맡길 것이냐에 있다. 교인들 중에는 알곡 신자가 있는가 하면, 가라지 같은 신자도 섞여 있다. 힘들겠지만 그 가라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 나에게 가라지를 인정하고, 가라지를 품고 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노라면 가라지도 변할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할 것은 혹시 내가 가라지는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김진하 목사 / 본지 주필  hdherald@daum.net
<저작권자 © 합동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구인본  |  kuinbon@daum.net  |  등록번호 : 서울 아03494  |  등록일자 : 2014.12.22.  |  사업자등록번호: 197-18-00162
사업자계좌 : 신한은행 110-453-110726 (예금주 : 구인본합동헤럴드)  |   우)01800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로 6  |  대표전화 : 02-975-3900
합동헤럴드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합동헤럴드.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