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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총회장상 수상 조신기 장로 신앙 여정

외국인 근로자 및 유학생 선교사역 구인본 편집국장l승인2019.06.07l수정2019.07.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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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장상 수상자:조신기 장로(대구중노회, 대구봉덕교회)

조신기 장로(대구중노회, 대구봉덕교회)는 5월 13일, 광주 겨자씨교회(나학수 목사)에서 개최된 예장합동 제56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제2회 총회장상(밀알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귀감으로 삼고자 그의 인생·신앙 여정에 대한 간증을 소개한다.

간증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러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총회에서 상을 주신 것은,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격려와 함께 다른 성도들도 힘을 합해 함께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면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을 간단히 소개함으로 감사함을 전하려고 한다.

▲ 조신기 장로 내외

현재 경북 경산시 경산시장 내 자그마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외국인교회, 외국인센터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경산 일대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의 쉼의 장소이며 외국인사역자들을 키우는 외국인 선교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선교에 헌신해야겠다는 투철한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 네팔

하나님이 마음 주시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나를 보고 선교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몽골

혹자는 겸손이라고 하지만 모든 일들은 정말로 내가 잘해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 꾸준히 있기만 했는데,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오히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좀 머쓱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 방글라데시

난 1961년생이다. 형제라고는 아무도 없는 독자이다. 아버지는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아무 친척이 없고 어머니 쪽에도 전쟁 때에 돌아가셔서 친척이 별로 없다.

▲ 고향방문

그러다보니 어려서부터 교회 가는 것을 좋아했다. 교회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생활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 고향방문

난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결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주 교회생활을 하면서 ‘이게 신앙생활의 전부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신앙인이라면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 네팔 현지사역

그때 마침 독립유공자 자녀 손들에 대한 혜택으로 대학 학비를 지원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신학교에 야간으로 편입했다. 회사 일로 여러 거래처를 다니면서, 타국에 와서 어렵게 근무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 네팔 현지사역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던 중 신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에는 신학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성주에 있는 동암교회에서 2년간 사역을 했다. 사역하면서 영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 네팔 현지사역

지인으로부터 경산시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 경산시장에 갔을 때는 사실 외국인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 다음 주에도 갔다.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실망도 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 네팔 예배

언어가 문제였다. 최소한 영어로 의사소통은 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부부가 같이 학원에 가서 배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면서 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아니 의지가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6개월이 지났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 네팔예배

처음으로 하는 일이라서 긴장되고 잘 될까 싶기도 했다. 2003년 4월 부활절을 기회로 삼아 작은 종이가방에 계란을 삶고 음료수와 과자를 좀 더 챙겨서 부활절 선물가방을 만들었다.

▲ 무료급식

일단 외국인들을 만나면 말도 안통하고 당장 복음을 전하기도 어렵고 할 말도 없었기 때문에 선물을 빌미로 접근하기로 한 것이다. 선물을 24개 준비를 했다. 큰 쇼핑백에 24개가 들어갔다. 24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생각도 했다.

▲ 무료급식

2003년 부활절, 처음 그들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 2시에 경산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처음 시장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경산시장에 도착하니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 미용봉사

마침 경산시장 버스 정류장에 벤치가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처음 외국인에게 접근하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하고 주저하다가 선물가방을 내밀자 ‘안사요’하는 것이다. 너무 놀랐다.

▲ 미용봉사

이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다니. 외국인은 자기에게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래서 ‘물건 파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오늘이 교회 명절이라서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선물을 받았다.

▲ 벤치 앞

벤치에 조금 앉아있으니 한 사람, 두 사람 더 오더니 24개의 선물이 2시간 만에 다 없어졌다. 첫 사역을 마치고 오는 길에 하나님께 참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 염려도 했고, 영어를 준비해야 한다고 미룬 것이 착각이었다. 외국인들도 넘쳤고, 한국말로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이 된 것이다. ‘일찍 시작했어야 하는데’하는 죄송함이 있었다.

▲ 상담

다음 주에도 역시 똑같은 선물을 준비했다. 대신 개수는 70개로 했다. 역시 선물이 다 나갔다. 매주 가다보니 질문을 해왔다. 왜 매주 선물을 주냐고, “그냥 주고 싶어서 준다. 이렇게 당신들을 만나니까 좋다” 외국인들은 매주 마다 오후 2시가 되면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 왔다. 같이 앉아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하고,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도 얘기하고, 참 많은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 선물을 들고

그들의 기숙사에 방문해서 준비해 놓은 저녁도 먹고 놀았다. 자기들의 집에 방문하고 같이 저녁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한 주는 이 사람, 다음 주는 저 사람. 말하자면 심방을 한 것이다. 한 주에 한 두 번은 저녁 12시가 되어서 집으로 오곤 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정말 피곤했지만, 마음은 솜털처럼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 성찬식

버스정류장 벤치 앞에 전화박스가 있었다. 그때는 휴대폰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아서 외국인들은 일주일에 한번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나올 때, 전화박스에 와서 고국에 전화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가 있다는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우리가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을 때면 외국인이 북적북적 모였다. 지나가는 한국인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쳐다보기도 했다.

▲ 성탄절

어느 날은 좀 늦게 도착했더니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가 그만두면 안 되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점점 날이 추워지고 바깥에 있는 것이 힘들었지만, 눈이 올 때도 비가 올 때도 한 주도 빠지지 않았다.

▲ 성탄절

그해 겨울은 추운 한대서 지내고 이듬해 2월 2004년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본 교회인 봉덕교회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교회라고 붙이면 좋겠지만 타 종교의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인 줄은 알지만 센터라고 부르기 때문에 친구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었다.

▲ 세례

센터가 생기니까 저녁이 되면 우리 부부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우리만 먹을 수 없어서 같이 먹다보니 한 주 한 주 사람들이 늘었다. 아예 식사시간이 되면 외국인들이 많이 모였다.

▲ 세례

그것이 점점 커져서 지금의 무료급식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점심과 저녁에 무료급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매주 100여 명 정도 된다. 매주 봉사해 주시는 분도 있다. 자기 손으로 외국인들을 섬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사실 우리가 더 감사한 일인데 말이다.

▲ 세례

센터에서는 무료 의료 진료도 한다. 외국인들이 모인다는 소식에 대구의 위드교회에서 의료봉사를 왔다. 한 번씩 오다가 작년부터는 아예 매월 마지막 주에 정기적으로 진료를 해 주신다. 병원에 갈수는 있지만 일하느라 시간이 늦어서 또는 시내로 나오기가 어려워서 아파도 참는 경우가 있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다.

▲ 야유회

미용기술이 있는 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를 하고, 매주 차량운행 봉사도 해주신다. 교회에서 차량을 지원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여러분이 돌아가면서 운전을 해주시는 것은 더 감사하다. 매주일 저녁엔 누구나 피곤한 시간인데 한 주도 빠짐없이 오랜 기간 운전으로 봉사하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처음에는 작은 일들이었는데, 그것이 조금씩 커지고 확장되어서 지금의 센터가 되어 움직이고 있다.

▲ 야유회

처음 센터를 운영할 때는 그냥 감사한 것뿐이었지만, 매주 먹고 친교를 하면서 우리가 이 사역을 시작한 것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인데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센터 설립 2년이 되어서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있든지 오후 4시가 되면 영어 예배를 드렸다. 이때 무슬림들은 슬쩍 자리를 피하기도 하지만 그냥 앉아서 구경삼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 여름수련회

한 무슬림이 살짝 말했다. 내가 당신이 예수 믿는 것도 알고 이곳이 교회인줄도 알지만 ‘센터’라고 이름이 붙어 있어서 좋단다. 친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기 나라에선 교회라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왜냐하면 많이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최소한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교회를 향해 돌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 의료봉사

영어예배를 시작으로 중국어 예배도 드렸다. 이제는 각 나라에서 유학 온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자국어 예배를 시간대 별로 드린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성찬을 하며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유아세례도 받는다. 성탄절이 되면 자기들 전통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러 나라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국내의 이곳저곳으로 야유회도 간다.

▲ 의료봉사

네팔 사역자가 있으면 네팔 예배를 드리고, 베트남 사역자가 있으면 베트남 예배를 드린다. 이 사역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외국인 사역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사역자들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목회자 양성 프로그램’이다 적합한 사람을 현지 선교사에게 추천받아서 유학생으로 한국에 초청한다.

▲ 전화부스 앞

그를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을 하면서 신학 공부를 하는 중에 경산지역의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유학생들이 모아 예배를 시작한다. 공부를 마치면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추천해 준 현지 선교사의 사역을 돕거나, 교회와 연계, 재 파송하여 현지의 복음의 일꾼으로 자리매김하는 형태이다.

▲ 정류장 벤치

파송의 소관은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조용하게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한다. 더 많은 유학생을 키우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텐데 재정적인 문제로 초청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센터에서 훈련한 엄릿 목사가 네팔로 떠날 때를 잊지 못한다. 마치 자식이 나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감사할 뿐 다른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꿈꾸었던 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다시 느꼈다.

▲ 중국어 예배

매 주일 센터에서의 시간은 참 아름답게 흘러간다. 한쪽에서는 의료·미용·상담 등을 하지만 한쪽에서는 예배를 드린다. 임금체불·폭력·상해·산재를 만난 외국인들, 외롭고 어려울 때 먼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 중국어 예배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기술을 가르쳐 주기 위해 컴퓨터를 가르치고, 한국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글공부도 시킨다. 한국음식도 만들어보고 한국인들과 축구 대회도 한다. 참으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봉사자들이 봉사를 한다. 조용히 기억을 떠올려보면 많은 외국인들의 얼굴이 지나간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고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마음은 남아있다.

▲ 축구대회

노동자들이 다쳤을 때는 아픔으로 마음이 산산조각 났다. 부러지거나 단순한 감기로 아파하는 것도 힘든데 팔이 절단되거나, 암에 걸리거나, 다른 심각한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접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겼다.

▲ 컴퓨터교육

까델이라는 방글라데시 청년은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돈이 없어서 투석을 미루다가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사망을 한 것이다. 장례부터 시신 인도까지 손수 하면서 너무 안타까워 가슴 아팠었다.

▲ 파키스탄에서

한국에서 일을 하다 팔이 잘리는 큰 상해를 입었던 근로자를 기억한다. 종교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지만 우리들이 도와주었을 때 너무 고마워했고 우리가 파키스탄에 갔을 때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었다. 지금도 보고 싶다.

▲ 한글공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정말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는 외국인들을 향한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곳이 선교지이며, 그 일을 감당하는 자가 선교사라고 생각한다.

▲ 한글공부

외국인들을 만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이 훌쩍 흘렀다. 언제까지 이 사역을 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넓은 운동장이 있는 쉼터를 세워서 직장을 이직하거나, 휴직중인 외국 노동자들이 마음껏 운동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 

구인본 편집국장  aki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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