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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개 같은 인생인가? 개만도 못한 인생인가?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총신대운영이사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19.08.19l수정2019.08.2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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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베르디(1813~1901)의 첫 오페라 작품이 프로렌스에서 공연되었을 때였다. 작곡자 베르디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은 채 공연장 한 구석에서 연주되는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그런데 그 콘서트홀에는 당대 최고의 위대한 작곡가인 로시니가 참석하여 앉아 있었다. 공연 중간에 관중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다. 작곡자인 베르디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베르디는 관중들의 감탄이나 박수 소리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거장 로시니만을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관중들이 환호하고 감탄 한들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로시니를 감격시킬 수 없다면 관중들의 감탄과 환호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르디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이고 오직 로시니만을 주목하며 그의 평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예전에 강아지를 기른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정이 들었었던 터라 지금도 가끔 강아지를 길러보고 싶기는 하지만 자제하고 있다. 그 녀석은 우리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차 소리만 듣고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4층에 살고 있었는데도 아래층에서도 벌써 앓는 소리 같은 짖는 소리가 들린다. 1층부터 계단을 올라가면 그 발자국 소리에 따라 짖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바빠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뭐가 그리도 반가운지 뱅글 뱅글 발 주위를 돌며 안아 달라고 보채댄다. 혹시라도 모른 체 하고 그냥 들어가면 기어이 좇아와서 귀찮게 한다. 결국 한번 안아 줘야 그제야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의 됨됨이를 강아지와 비유해서 형편없는 사람일 때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했고, 그보다 좀 나은 경우에는 개 같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개보다 나은 경우가 이렇게 힘들 수 있는가? 난 강아지를 기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깨닫는 것도 많았다. 우리들의 삶이 강아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위에 계신 하나님, 우리 주님을 그렇게 사모하고 한번 아는 체라도 해 주시기를 위해 몸부림쳐 본 적이 있는가? 내 발걸음을 주님이 평가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사모한 적이 있는가?

미가 선지자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미가 6:6) 여러분은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여러분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어떤 것인가?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1) 번제물 1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나아갈까? 2) 천 천의 수양을 가지고 나갈까? 3)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4) 내 허물을 위해 내 맏아들을 드리면 기뻐하실까? (이방 종교에서 최고의 헌신을 표할 때 자기의 맏아들을 번제로 드린다) 5) 내 영혼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 정도라면 최고의 신앙생활의 모습일 것이다. 흠 없고, 부족함 없는 신앙의 인텔리라고 할 만하다. best christian이요, 신앙의 최고봉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이것을 쉽게 표현하면 네 제가 적어도 십일조 하나만은 확실하게 떼어 드렸지요. 교회 건축할 땐 건축헌금 남부럽지 않게 드렸고, 교회에서 피아노 구입할 땐 내가 자원했고, 교회 자동차 구입할 땐 절반은 내가 부담 했지요. 목사님 도서구입비도 가끔 드렸고 활동비도 넉넉히 드렸지요…….

그러나 그 다음을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하나님 앞에 양 잡아 번제 드렸다고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힘에 지날만한 헌금을 구별해 드렸다고 우쭐대지 말라. 지금까지 예수 믿고 한 번도 주일날 빠진 적이 없고, 성가대, 교사, 구역장,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땀 좀 흘렸다고 어깨에 힘줄 필요는 없다. 이런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뜻밖에 다른데 있었다.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8) 비록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물질을 드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겸손한 자세의 경배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전쟁이 끝나고 독일 어느 마을에서의 일이다. 한 교회 앞에 예수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전쟁 통에 포탄을 맞아 팔이 잘린 채 여기저기 부서져 굴러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새로운 동상을 만들어 세우자. 부서진 것은 복구가 힘들다……. 그러나 결국 부서진 것을 복원하여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끊어져 나간 두 개의 손 중에 하나는 찾았는데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비문을 남겼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없으시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들의 손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손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신다.

그렇다. 주님은 우리의 손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예수의 잘려나간 손이 되어 주님이 못다 하신 일들을 마무리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상 못 할 모진 핍박과 고난이 엄습한다 할지라도, 혹은 내게 유익은 하나도 없고,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뺨을 맞는다 할지라도 예수의 부러져 나간 한쪽 손이 되어 평생을 헌신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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