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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칼럼] 하나님은 타이밍의 마술사

김진하 목사/증경평양노회장·예수사랑교회·총신대운영이사 논설위원/김진하 목사l승인2019.08.26l수정2019.08.2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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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때로 감탄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가 막히도록 절묘한 하나님의 타이밍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은 1876년 강제적으로 맺은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더욱 외세에 휘둘리며 급속히 쇠퇴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는 부패한 정치와 탐관오리들의 행패, 그리고 과중한 세금 문제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날로 더욱 피폐해져 갔다. 결국 참다못한 농민들이 개혁을 요구하며 일제히 봉기하였는데 이것이 1894년 6월과 11월 등 2차에 걸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었다. 이들은 약 1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저항하였지만 결국은 대학살을 당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1차 동학농민운동이 열흘 만에 종료되고 난 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누가 조선의 지배권을 가질 것인가를 놓고 두 나라는 1894년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10달 동안이나 전쟁을 벌였는데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국제적으로 그 지위가 견고해졌고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더욱 적극적으로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을 견제할 세력은 러시아만 남게 되었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조선에서 몰아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명성황후를 일본이 그대로 놔둘리는 만무했다. 그들의 눈에 명성황후는 눈에 가시였고, 늙은 여우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소위 여우 사냥을 위해 음모를 꾸몄고 1895년 10월에 국모시해사건을 벌이고 말았다.

일본은 고종을 협박해 명성황후를 퇴출하라고 위협했지만 고종이 거부하자 밤중에 자객들을 왕비의 숙소로 보내 참혹하게 칼날로 난자했고, 석유를 뿌려 시신을 태운 후에 뒷산 숲 속에 묻어버렸다. 이렇게 우리의 국모는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1896년 2월 11일 심야에 러시아 공관으로 피했지만 오히려 러시아가 일본과 가까워짐으로 인해 10일 후에는 다시 환궁하여 우리의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바꾸었다. 506년 동안 사용해 오던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향해 만주에서 철병할 것을 요구하며 1904년 2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러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의 승리 쪽으로 전세가 기울게 되자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테프트협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게 된다. 영국도 그해 8월에 영일동맹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였다. 이렇게 일본의 조선 침략, 즉 식민지 정책이 국제적으로 공식 승인된 것이었다.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본격적으로 대한제국을 위협했다. 그리고 1905년 11월 강압적인 수단으로 을사5조약(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고종황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담에 이준을 밀사로 파견하여 일본의 행위를 폭로하려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다.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이를 핑계로 고종황제를 퇴위 시키고 조선을 일본에 합병하려 했다. 그러자 항일운동을 위해 가족을 떠나 망명해 있던 안중근 의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꿋꿋하게 감옥 생활을 하던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여순 형무소에서 사형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겨우 형태만 남겨놓았던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에 한일합병조약을 강요당함으로 인해 결국 망하고 말았다. 약 1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5천년의 긴 세월동안 외적의 침입을 940여회 받으면서 풍전등화처럼 살긴 했지만 이렇게 불씨마저 모두 꺼져버려 아무런 대안이 없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말 그대로 당시는 캄캄한 암흑의 시기였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세계 여러 곳에서는 성령의 부흥 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1904~1905년에 일어난 웨일즈 부흥운동으로 인해 5주 만에 2만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또 인도의 카시아 지방에서도 놀라운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190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아주사 거리에서도 전무후무한 오순절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1907년 1월 14~15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는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매일 1500여 명의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10일간 저녁집회가 열렸다. 사람들은 과거의 죄를 토해내기 시작했고, 처절한 통곡으로 회개하였다. 구체적으로 죄를 회개할 뿐 아니라, 훔친 돈을 배상하고 용서를 빌고, 서로를 용서하였다.

이 성령운동은 장대현교회에만 그치지 않고 평양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불길은 이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중국으로까지 불길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 부흥운동으로 인해 기독교인의 영향력도 급속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예를 들면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지도자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 이었다. 그리고 우리 조선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게으르고 희망이 없던 민족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나라의 반만년, 즉 5천년 역사 중에 가장 어두웠던 암울한 시기에 가장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일하신다. 요나를 들어 물에 던질 때에 하나님은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도 큰 물고기를 때맞춰 준비해 두셨다. 그 타이밍을 조금만 놓쳤어도 요나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진 그 순간 하나님은 모든 물고기를 한곳에 모아 두셨다. 베드로가 어린 소녀 앞에서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바로 그때 그 타이밍에 맞춰 한 장닭이 목청을 높여 구성지게 울어댔다. 그리고 위대한 제자 베드로가 탄생하였다.

하나님은 타이밍의 마술사이시다. 하나님의 때는 이르지도 늦지도 않으시다. 가장 적절할 때에, 가장 필요할 때에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하신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신다. 내가 조급해도, 또는 내가 실수하여 기회를 놓친 듯해도 섬세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나를 위해 일어나실 것이다. 사방 주변 나라들에게 우겨 쌈을 당하고 피할 곳조차 마땅치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며 너도 나도 긴 한숨을 쉬지만 이 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때맞춰 일하실 것이다. 그 하나님을 만나자.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pastor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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