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이었던 이 날 그 당시 제물포로 불렸던 인천항에 두 선교사가 도착했다. 장로교 선교사였던 26세의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였던 27세의 아펜젤러였다. 당시 미국계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를 위한 입국에는 두 가지 배경과 연관되어 있었다. 첫째는 1800년대에 일어난 대각성 운동과 무디의 부흥운동 영향으로 선교에 대한 열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둘째는 1882년 5월에 미국과 조선 사이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때문이기도 했다.

이 조약의 체결이 있었기에 1884년 9월 20일 선교사가 한 명도 없던 시절에 의사 선교사였던 알렌이 제물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렌은 조선에 오기 전 중국의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의료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파송된 지 1년이 다되도록 제대로 정착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알렌에게 조선에 가서 활동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면하였고 새롭게 맺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사역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조선에 도착하여 미국 공사관의 의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에 새로운 국면을 초래하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른바 ‘삼일천하’로 알려진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갑신정변은 김옥균, 박영호, 홍영식 등의 개화당이 일본의 힘을 빌려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고 일으킨 갑신년의 정변이었다. 이 난으로 인해 그날 밤 다수의 수구세력들이 살해되었고 명성황후의 조카뻘 되는 수구세력의 우두머리인 민영익도 자객들에 의해 난자당하고 말았다. 그의 동맥은 끊어졌으며, 머리와 몸은 일곱 군데나 칼을 맞아 위독한 지경이었다. 왕실의 어의들 14명이 모두 달려들었으나 치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한국 정부의 외교고문이었던 뮐렌도르프가 황급하게 의사 알렌을 불러 사경을 헤매던 민영익을 살려내게 된 것이다.

알렌은 당시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를 기억하며 “걱정과 불안 속에서 석 달 동안이나 조심하며 치료했다”고 그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임금의 어의로서 정식 임명을 받을 정도로 왕실의 신망을 얻었고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처형당한 홍영식의 집을 하사받아 그 자리에서 광혜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병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양의 근대식 병원으로 훗날 세브란스 병원이 된 것이다. 제중원으로 개명한 이 병원은 전통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병든 환자라면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치료해 주었으며 치외법권 지역이라 당시 조선에서는 금지된 예배도 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았던 알렌이 조선 입국을 준비하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게도 길을 열어주게 된 것이다. 어두웠던 조선을 향한 선교의 통로 역할을 하던 제중원에 두 선교사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의료 활동과 교육 사업의 전초기지가 열린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개의 사건들이 벌어졌지만 그런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어 조선선교의 멋진 걸작품이 만들어졌고 언더우드를 통해 연세학당이 세워져 교육사역에 박차를 가함으로 젊은이들을 깨우게 되었고 연세학당은 오늘날 연세대학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세속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전혀 상관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보면 절묘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선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고 계획하지 못했던 방법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계획하신 일을 빈틈없이 진행하고 계신다. 사람이 보기에는 분명 실패 같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망가진 일 같아도 하나님은 그 헝클어진 역사의 퍼즐을 절묘하게 맞추어 가시면서 순간순간 숨겨두었던 필요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위해 일찍이 일하기 시작하셨다. 135년 전 가난하고 무지하고 완악했던 조선 땅을 위해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그리고 최초의 순교자였던 토마스 선교사를 준비시키신 것이었다.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사도 바울의 가는 길을 막으시고 밤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손짓하는 환상을 보여주며 발걸음을 유-턴하게 하심으로 유럽을 거대한 기독교문명으로 무장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지금 이 나라에는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교회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무너지고 정치가 실종되고 나라의 리더십이 땅바닥에 떨어진 어이없는 현실에 놓여있지만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일하실 것이다. 분명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려 놓을 기막힌 일들을 계획하고 계실 것이다. 홍해 앞에서 낙담하며 우왕좌왕하는 백성들을 보시면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