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중고등부 전도사로 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이다. 한 중학생이 있었다. 소아 비만으로 인해 몸의 균형은 깨지고 시력이 좋지 않아 잠자리처럼 큰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벗으면 장님처럼 헤매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좀체 잘 어울릴 줄을 모르고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을 흘리고 엉뚱한 소리를 잘 함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다. 예배 시간이면 늘 졸았고,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드나들기도 했다.

그런데 몇 주째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에게 물어보니 아파서 못 나온다는 것이었다. 궁금하여 어느 토요일 날 그 집을 방문해 보았다. 그 아이는 그 집안의 5대 독자였다. 가문의 유일한 씨앗이었다. 이 아이의 부모와 조부모님들은 이 아이 하나에 소망을 걸고 사는 분들이셨다. 그런데 이런 아이가 아파서 누웠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이었다.

세상에는 사실 하찮거나 무시하고 짓밟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얼핏 볼 때 실력 없고, 돈 없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깔보지 마라. 부족해 보이고 허점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해도 그 부모에게는 둘도 없는 아들이며 딸이다. 그 못난 아들 딸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얼마나 피눈물을 쏟았겠는가? 서울역 대합실에서 밤을 지세우거나 지하도 계단에서 새우처럼 쭈그린 채 냉장고 박스 접어 그 속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라고 할지라도 집에 들어가면 기다리던 아버지요, 남편이요, 집안의 기둥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중요한 사람이고, 망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우린 언제나 사람을 세워주고 살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고, 절망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우는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사람을 정죄하거나 판단하거나 심판하지 말자. 우리는 검찰청의 검사가 아니다. 죄를 찾고 잘못된 것들 들추어내고,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이들이 아니고 의사처럼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약한 사람에게 힘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려고 하기 보다는 과거를 묻지 말고 덮어주는 일을 하자. 행여 사람을 못 살게 하는 일에 가담하거나 쓰임 받지 말 것이며 사람을 죽이고 짓밟는 일에는 그림자라도 비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다. 그 손가락은 다섯 개가 다 쓰임새가 다르다. 엄지는 우두머리를 나타낼 때에 사용하고, 검지는 방향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중지는 가장 긴 손가락으로 구슬치기할 때 더 없이 유용하다. 약지는 엄마가 아이의 약을 먹일 때 숟가락위에서 가루약을 섞을 때 사용한다. 그렇다면 가장 볼품없는 새끼손가락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가장 짧고, 가늘기 때문에 겨울철 코가 막혔을 때에 유용하다. 콧구멍은 숨통이다 숨통을 열어 주는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새끼손가락이 유용하게 쓰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이 나선다. 가장 작고, 보잘 것 없고, 쓰임새 없어 보이는 새끼손가락이지만 모든 손가락을 대표해서 약속장소에 나가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별 볼일 없어 보이거나 업신여기기에 딱 맞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다윗의 아비인 이새는 새끼손가락 같은 막내아들 다윗의 가능성을 까맣게 몰랐다. 늠름하고, 훤칠하고, 핸섬 하게 생긴 아들들의 인물에 눈길을 뺏겨 막내아들 다윗의 가능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우리 자신을 한 번 보라보라. 내 인생이 별 볼일 없어 보이는가? 엄지도, 중지도 아닌, 간신히 끝자리에 붙어있는 새끼손가락 같은 존재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이야 말로 하나님이 이 세상의 꽉 막힌 숨통을 트기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하실 새끼손가락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타다만 부지깽이와 같고, 비온 뒤에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처럼 씨잘 데 없어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고 지켜보아 주시기만 한다면 보잘 것 없는 새끼손가락의 위대함을 만방에 선포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