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스튜어디스 서서영 씨의 이야기이다. 국제선 비행기를 타면 보통 10시간 이상 운항을 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한 차례 객실 서비스를 마치고 나면 벙커라고 하는 휴식공간에 들어가서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한다. 서서영 씨는 벙커에 들어가려다가 혹시 손님 중에 도움이 필요한 분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 객실복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데가 있으세요?”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서서영 씨 귀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틀니를 잃어버렸는데 어느 화장실인지 생각이 나질 않아 어떡하지?”

서서영 씨는 ‘제가 찾아보겠다’ 면서 일단 할머니를 좌석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객실 화장실의 쓰레기통을 앞쪽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에도 없었고, 두 번째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휴지에 쌓여 버려진 틀니를 발견하였다. 할머니는 양치질을 하느라 잠시 틀니를 빼놓았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서서영 씨는 틀니를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한 후에 할머니에게 전해 드렸다. 할머니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릴 때까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몇 년이 흘러 그날 있었던 일은 서서영 씨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 졌다. 어느 날 교제하던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을 앞두고 지방에 있는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는데 마침 미국에 살고 계시는 외할머니가 서울에 오셨다는 것이었다. 함께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예비 시댁의 어른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으신 분이라 서서영 씨는 잔뜩 긴장한 채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를 뵌 순간 어디서 본 듯 낯이 익어 보였다.

“할머니 처음 뵙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자주 뵈었던 분 같으세요”

할머니는 서서영 씨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손뼉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아가! 나 모르겠니? 틀니, 틀니”

그러시면서 손가방 안에 들어있던 여권을 꺼내 보여주시는데 거기에는 서서영 씨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언젠가 비행기를 타게 되면 그때 그 친절했던 승무원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이름을 여권에 적어놓으셨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외손자가 결혼할 처자가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이런 인연이 어디 있느냐” 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서서영 씨는 결혼하기도 전에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며 웃었다고 한다.

우연히 찾아오는 인연이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길로 나를 인도할 수 있다. 여기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영원한 영생의 복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초대교회 시대에 고린도교회를 힘써 섬기며 주의 종 바울 사도를 생명 다해 받들었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였다. 이들의 이름은 성경에 여섯 번 소개되고 있는데 세 번은 남편 아굴라의 이름이 앞에 나오고 세 번은 아내 브리스길라 이름이 앞에 나온다. 이들 부부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아볼로를 불러다가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세례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 가르치기도 했던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원래 로마에 살았는데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함으로 바울이 사역하고 있는 고린도로 온 부부였다. 특이한 것은 이들 부부의 직업이 바울의 직업과 같은 장막 만드는 일이었다. 이들 부부는 건축업자 사장이었고 바울은 일군으로 일터에서 만났던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 보다 더한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고 훗날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하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던 것이다.

(롬 16:3~4)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어놓았나니...

이들 부부가 바울을 위해 목을 내어놓았다는 것은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복음 때문에, 주의 나라 때문에 만난 우연한 인연에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주님은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연히 만난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려 고통당하시다가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놓으셨다. 복음 안에서 우연히 만나 만들어진 고귀한 동역자들 간의 거룩한 인연을 행여라도 휴지통에 던져 버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