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자동차 잡지를 보면 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제로백’이란 말이다. 차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시속 0킬로미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자동차 업계에서는 제로백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제로백이 8초인 차보다 7초인 차가 가속력이 더 빠른 차다. 어떤 슈퍼카는 제로백이 3초도 채 안 된다. 시속100 킬로미터로 달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건, 일정 궤도에 금방 올라간다는 뜻이다. 운전자가 원하는 퍼포먼스를 빨리 구현해준다는 말이다. 얼마나 연료를 덜 쓰는지, 최고의 속도는 얼마인지는 또 다른 기준점이겠지만 <없던 오늘>에 나오는 글귀다.

우리 모두‘제로백’시대 속에 살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다. 뭐든 빨리 업적과 결과를 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인정받는다. 그렇지 못한 자는 무능한 자라고 도태를 당한다. 여태껏 우리 사회가 그랬다. 조금 나아져 보이지만 여전히 그렇다. 재능, 능력, 업적, 결과 이 모든 것이 제로백 싸움에 달렸다. 빨리 도달해야 한다. 빨리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 그 기업은 능력 있고 유능하다.  

목회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목회의 제로백 경쟁에 빠른 사람도 있는가 하면 느린 이도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제로백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목회의 제로백 타임이 좀 느리다고 기다려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교인들 수가 증가하기를 바란다. 예전처럼 교회 부흥기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니 한 교회를 책임진 목회자들이 골머리를 앓는다. 교회를 세상의 비즈니스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세속화가 아닐까?

▲ 2007년 美 시카고 글렌코 비치에서 옥광석 목사

그렇게 본다면 예레미야 선지자의 목회는 완전 실패였다. 그의 제로백은 마이너스요 제로였다. 그런데 그는 역사 속에 어떤 선지자보다 존경 받는다. 그러니 목회의 영역, 신앙의 영역에서는 제로백 시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숫자의 유능함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그래서 무능하다고 세상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압박한다. 열등감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빠른 제로백에 함몰되어 영혼은 황폐화 되어간다. 그렇게 숫자에 함몰된 지친 영혼이 안식과 쉼과 평안을 누릴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 동안 교회도 세상처럼 생존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업적도 남겼다. 하지만 교회는 업적을 세우는 곳이 아니다. 숫자 싸움 하는 곳도, 세상 비즈니스 현장도 아니다. 제로백 싸움하는 무한 경쟁의 장소는 더더욱 아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가족 공동체다. 오직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안과 안식과 쉼을 제공해 주는 지상의 안식처다. 십자가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어야할 구원과 사랑의 공동체다. 영혼을 다루는 곳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안에 세속화의 물결이 많이 들어와 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업적으로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등 목사, 꼴찌 목사. 일등 교회, 꼴찌 교회. 큰 교회, 작은 교회. 교인 수, 재정 액수, 클릭 수로 등수를 매기기 시작한 것이다. 제로백의 무한 경쟁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목회자는 아주 무능한 존재로 낙인찍히기 시작해 버렸다. 이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빠른 제로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무능함보다 더 가슴 아프다.

답답한 코로나 시대와 척박한 목회 환경 속에서 제로백 경쟁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양하는 목회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우리 시대의 숨겨진 또 다른 영웅들이다. 세상처럼 위만 쳐다보지 말고, 큰 수와 업적에만 함몰되지 말고, 아래와 낮은 수에도 관심을 가지고 신앙하면 어떨까? 그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면 어떨까? 한 영혼의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회도 역사를 패싱할 수 없다.

느긋함을 가지자. 조급함은 공멸을 가져온다. 느린 속도도 즐기자. 주변도 좀 살피면서 작고 사고한 것에 감사하자. 주님께 운전대를 맡기자. 조수석으로 자리를 좀 옮기면 어떨까? 목회와 교회는 제로백 경쟁에서 초월해야 한다. 화가 황규백 님은 <자존자들>이란 책 속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한 작품을 그리는데 일주일의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그렇게 그리기 위해서 88년이 걸렸어요” 교회란 무엇을 그리는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