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김진하 목사

바울 사도는 참으로 잘 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지성과 학식으로 비교한다면 베드로는 감히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는 하루에 3천명, 5천명이 몰려오는 능력이 나타났지만 바울 사도는 시장터나 뒷골목에서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죽도록 매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다.

바울은 평생 반듯한 예배당 하나 가지지 못한 채 떠돌이 전도자로 살다가 결국에는 목이 잘려 세상을 떠난 비운의 목회자였다. 바울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버림받은 외로운 목자였다. 함께 하던 동역자들도 그의 인생 말년에는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갔다.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딤후 4:16)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이로 볼 때 바울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슬픈 목자였다.

사실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대부분 소란했고 시끄러웠다. 그래서 제발 그렇게 살지 말고 좀 똑바로 살라며 눈물로 애원하면서 써 보낸 편지가 신약의 서신서다. 바울이 목회에 성공했더라면 로마서, 고린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서는 아마도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 사도는 결혼도 포기한 채 오직 복음만을 위해 평생을 달려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회나 선교는 생각한 것처럼 평탄하게 열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에서의 고백처럼 그는 인간의 한계를 처절하게 체감했던 사람이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대 사도였던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인간 실존은 사망의 몸을 입고 있는 곤고한 사람이었다.

시편 기자는 질문하고 있다.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자가 무엇이기에... 도대체 사람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질문이다. 사람이란 말의 어원은 ‘에노쉬’ 이다. 에노쉬는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존재’ 라는 뜻이다. 도무지 고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죽어가는 불쌍한 존재, 풀잎처럼 서서히 말라가는 존재, 시들어가는 보잘 것 없는 가련한 인생을 말한다. 그러므로 ‘에노쉬’ 이 말은 창조주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는 한 순간도 버텨낼 수 없는 허무한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말이다.

시편의 저자는 또 이렇게 질문한다. (시 8:4)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여기서 인자란 말의 어원은 ‘벤 아담’ 인데 낮고 비천한 존재로 먼지 같은 인생을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요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가련한 인간을 의미했다.

인간은 잠시 살다가 떠나가는 나그네요 행인이다. 세월 따라 늙어 가는 자요, 죽어가는 사람이요 소멸되어 무덤으로 돌아가는 에노쉬요, 벤 아담이다. 성경은 인간을 존귀하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반면에 힘없고 연약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 같은 인생’ 이라고 했고, 욥이라는 동방의 의인은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도 눌려죽을 불쌍한 인간’이라고 했다. 호세아는 ‘해가 뜨면 없어지는 아침 구름이요,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죽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다’고 했다. 모세는 사람의 한평생이 ‘한 번 숨 쉬는 것 같고 날아가는 화살 같으며 인생의 길이가 한밤중의 잠간 반짝이다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점 같다’ 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기도 했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런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인간들을 하나님이 생각해 주셨다는 것이다. (시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생각하시며? 하나님의 기억 속에 담아놓고 계신다는 말이다. 나 같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가슴에 담아놓고 기억하고 계신다니...

이것이 바로 은혜요, 감격 아닌가? 이 분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한다. 말라가는 풀잎 같은 존재를 기억해 주시고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 같은 인생을 구원해 주시며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분, 그 하나님이 타다만 부지깽이 같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 같은 우리를 귀중하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사용해 주시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