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군인은 움직이지 않는 법부터 배운다. 뭔가를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정지 상태로 옮겨놓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운전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차를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이빙을 하는 사람은 물에서 나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이 어떤 상태가 되었을 때 붓을 내려놓을지를 배워야 한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이 어떻게 끝날지를, 그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추는 법을, 말하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잊는 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뭔가를 이루고 소유하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과 헤어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세상으로 들어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안규철이 쓴 《사물의 뒷모습》에 나오는 글귀다.

▲ 어린 시절 부모 누이와 함께 한 옥광석 목사(뒷줄 중앙)

이제 2주 후면 옛 도로를 벗어나 새 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지성이라는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책을 읽었다.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논한 도서다.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 도전하자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 책을 읽고 놀란 것은 그가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170여 권의 도서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놀랐다. 과히 세계적인 지성이라 여겨졌다. 그는 말한다. 나이 드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사춘기라고. “열정은 여전히 번득이고 영혼과 마음을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정신적 나이, 감정적 나이는 생물학적 나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나이에서 황폐한 장식을 벗겨내고 노년을 유머와 멋으로 갈아엎어야 한다. 한계는 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로 책을 종결한다. “행복한 인생이었든 고통스러운 인생이었든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의 크기가 가늠된다. 우리는 상처받았지만 충만함을 얻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가 참 많다. 그렇지만 우리가 올리지 않았던 기도가 100배로 성취되기도 했다. 우리는 악몽을 관통했고 보물을 받았다. 삶은 참 잔인하거나 지루할 수도 있고 풍성할 수도 있다. 매일 아침, 받은 바에 감사하면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에 감사하자.”

감사로 2021년이란 친구와 작별하고 2022년이란 새 친구와 사귀면 어떨까? 우리의 생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이제 또 다른 촛불로 옮겨 발화할 시점이다. 한 해 동안 익숙했던 도로에서 빠져나와 미지의 도로로 접어든다. 잠시 멈출 때다. STOP.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할 때다. 휴게소로 진입할 때다. 자만과 무리는 금물이다. 코로나의 자욱한 안개와 비바람으로 힘겨운 운전이었다. 열정과 감사의 연료는 그대로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도 채우고 차량도 점검해야지. 그래야 새 도로를 힘차게 달릴 수 있다. 내비게이션 장착은 필수다. 그렇게 우리는 2021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2022번 도로 진입을 위해 잠시 쉰다. STOP. 잠시 멈추고 쉬면서 마시는 휴게소의 커피 맛은 일품이다. 이제 곧 진입할 새 고속도로의 여정이 사뭇 기대된다. 감사와 열정의 연료가 가득 채워졌는가? 이제 신나게 달리기는 일만 남았다. 즐겁게 달리면 된다. 안전 운행은 필수다. 감사로 2021번 도로와 작별하자. 열정과 또 다른 감사로 2022번 도로와 만나자. 코로나의 안개와 비바람이 여전해도 두렵지 않다. 차가 있고 기름이 있고 운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고 신비다. 생의 열정으로 타올라라. 감사여, 다시 타올라라.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전 9:4). 소망의 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더 힘차게 달려보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잠시 멈춤.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