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평형수는 배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배 바닥에 넣어주는 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영어로는 ballast water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배는 물건이나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운송수단으로 배에 물건을 싣게 되면 무거워져서 살짝 가라앉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 무게중심이 잡혀서 안정적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물건을 하역하게 되면 배가 가벼워져서 무게중심이 상대적으로 위쪽으로 이동해 작은 흔들림이나 파도에도 심하게 요동치는 불안정한 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 때 인위적으로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서 넣는 것이 바닥짐 또는 선박평형수인 것이다.

​예를 들면 부산에서 빈 배로 출발할 때는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탱크 안에 선박평형수를 채우고 출항을 하지만 상하이에 도착해서 짐(사람)을 싣게 될 경우 탱크 안의 선박평형수를 바다로 흘려보내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이다. 파도가 높은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균형을 잘 유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배 밑에 실려 있는 선박평형수 또는 바닥짐 때문인 것이다.

세월호가 일본에서 중고 배를 사다가 개조하는 과정에서 선박평형수를 규정에 맞지 않게 넣고 운행함으로 좌초되고 침몰에 이르르게 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선박평형수, 또는 바닥짐은 어찌 보면 불필요하게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선박평형수는 배가 전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 장치로 안전운항에 필수시설이다. 때로 우린 인생에도 무겁게 느껴지는 선박평형수가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로 인해 고난을 극복할 수 있고 난관 속에서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평생을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해 살아온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어느 모임에서 연설한 내용 중에 보면 리빙스턴에게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그에게는 집을 나가버린 방탕한 아들이 있었다. 그런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늘 남들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근심거리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근심거리가 어쩌면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평형수일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최고의 율법선생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문하생이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샤프한 청년이요 어디 부족한 구석이 하나 없는 핸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 만삭되어 나지 못한 자 라고 하며 평생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수없이 투옥하고

괴로움을 주었던 바닥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딤전1:12) 이 바닥짐이 그에게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천하에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일 줄 모르는 자만하고, 거만한 인물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대 가장 존경받고 흠모 받는 왕은 다윗이다. 이 다윗이 평생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목욕하던 여인, 우리아의 아내와 간통한 사건 때문이었다. 이 바닥짐이 그를 평생 쫒아 다녔기에 수많은 업적과 태평성대를 일구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 평형수가 그의 삶을 균형 있게 인도했던 것이다.

대통령의 맏딸로 태어나 애지중지 성장했고 일찍이 어머니를 잃어버려 어머니 대신 First Lady 역할을 대신했고 아버지 또한 부하의 총탄에 서거하자 청와대를 떠나 초야에 묻혔다가 뒤늦게 국회의원으로 나서며 일약 선거의 여왕이 되었다. 그가 치루는 선거마다 승리를 거두었고 이윽고는 여당의 대표를 역임하더니 드디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청와대에 들어와 주인이 된 그에게 거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통령의 권력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고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배가 순풍에 돛단 듯 잘 미끄러져 나가는 줄로만 생각했다.

이 배에 바닥짐인 선박평형수를 적절하게 채워 넣어서 배를 무겁게 하고, 어느 정도 물에 가라앉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국회에서는 탄핵 가결이라는 결과가 나온 뒤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에게는 아쉽게도 평형수가 부족했다. 바닥짐을 넉넉히 싣지 못했다. 그랬기에 잘 나가는 줄 알았던 배는 어이없게도 세월호처럼 물속에 거꾸로 처박혀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바닥짐이나 평형수가 무엇인가? 때로는 내게 부담이 되고, 무거운 짐 같지만 내 인생을 균형 잡게 해 주고 적절히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버팀목을 말한다. 비록 탄핵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졌지만 이제라도 그 짐이 바닥짐이 되고, 평형수가 되어 이후의 삶이 더 윤기 있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전직 대통령의 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