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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Ku마태여행스케치/갈릴리예수를 찾아] 제1회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l승인2017.05.24l수정2017.11.2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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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가문의 영광>이라는 영화가 있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은 명문가문이 아닌 가문에서 상용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 속에는 자기 가문이 명문가문이 아니라는 의미가 용해돼 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예수의 족보에 편입됨을 통해 영적 왕족으로 신분의 격상이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이 ‘가문의 영광’이라는 표현과 고백이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만큼 족보에 대한 애착과 집착과 애정이 지극한 민족도 흔치 않다. 과거 봉건시대에는 자기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족보를 가감·조작·위조·매매하는 실례도 있었다. 우리는 자기 조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좀 추가하고 보태어 과장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태복음 1장에 수록된 예수의 족보는 고대근동 이방 문화권의 한 익명의 부족이 어떻게 세계사의 주류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사람은 표면적 족보 나열의 이면에 담지 된 메시지를 발굴해야 한다.

초기 유대인 그리스도 공동체는 제도화되어 감에 따라 내부에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양산됐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마태복음은 “교회는 어떠해야 된다”는 교회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제도화되어 순수함이 퇴색됐고, 고령화되어 역동성이 상실됐다. 그러므로 교회의 자정능력·도덕성·투명성은 위험수위에 도달해 교회의 진정성이 사회로부터 의심 받고 있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고 염려하여 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모색하고 지향점을 제시해야 되는데,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미증유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사회는 교회를 상대로 공청회를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 작금의 기독교 공동체는 마태가 제시한 교회론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팔레스티나에서 태동해 유럽에서 꽃피게 될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는 마태의 족보 이야기를 접하면서, 과거 역사적 한 시점을 구체적으로 점유하고 살았던 신앙의 열조를 단순히 회고하고 상기 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존적으로 내면화했다. 즉 초기 유대인 그리스도 공동체는 족보에 수록된 신앙의 열조 너머에서 족보를 관리하며 섭리하는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와 그 역할을 간파했다.

족보 이야기는 다음 몇 가지 의미들을 묵상의 자료로 남겨준다.

첫째로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은 질곡의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금싸라기 같은 고향을 떠나 안정감이 떨어진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했고, 아내의 불임으로 심각한 마음 앓이도 했다. 나아가 늦둥이 독자를 제사물로 봉헌해 인신제사도 드릴 번했다.

이삭은 소년시절 인신제사의 제물이 될 번한 공포를 경험 했으며, 생존의 기반 확보를 위해 굴착한 우물을 여러 번 수탈당했다. 그리고 아들들의 반목과 가정의 해체도 경험했다.

야곱은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시절 편법을 도모하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모진 타향살이를 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 타향에서 고생해서 축적한 재산이 일순간에 공중 분해될 번한 단장의 상황도 경험했으며, 황혼기에는 요셉의 실종과 베냐민 이집트 소환으로 좌절하기도 했다.

요셉은 피붙이에 의해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됐고 파렴치범으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타 문화권에서 외로운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열조들은 위기를 믿음으로 구축한 신앙의 교과서와 같은 표본·준거점이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가계의 대가 끊어질 번한 아슬아슬한 위기 속 에서도 이방인 여성이라는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계대를 이어갔다.

셋째로 이방인 지배에 의한 바빌론 유배라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되지 않았다. 기원전 587년은 하나님 임재의 가시적 상징이자 표현인 성전이 파괴 된 비참하고 참혹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절망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파견해 희망과 재건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서양속담에 “마지막이 좋으면 다 좋다” 말이 있듯이 족보의 지향점과 종착점은 그리스도 예수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에 편입된 모든 등장인물은 거룩한 의미를 지닌다.

첨단 디지털이 일상이 된 후기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한궤도의 데드매치(dead match)로 내몰리고 있다. 물질로 모든 것을 환산하는 자본주의적 경향성·부의 편재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생명의 영역에 까지 침투한 유전공학·인명경시풍조·실업률 증가·고용 불안정·배우자의 도덕적 탈선·이혼·가출·가족들의 외면·가정해체·자살 등이 삶의 질을 갉아먹고 있다.

이런 비탄에 잠긴 상황 속에서 단 한군데도 기댈 곳이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웃을 목격하는 것도 이제는 고전이 됐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으로인해 절망과 좌절과 비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 대한 디자인과 계획을 실현하고 있다.

밤이 깊으면 아침이 가까웠고 일출 직전이 가장 추운 법이다. 좌절하지 말고 절망의 끝자락에 새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대망해야 한다.

그것을 희망 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는 “기댈 곳이 있고 돌아갈 수 있는 품”이 있기 때문이다.

유다인은 족보 단절의 위기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족보를 관리했기 때문에 족보는 이어지고 계승되어서 메시아인 그리스도 예수라는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라는 왕족의 족보에 편입된 편입생이다. 그러므로 그 분의 은혜에 편승하는 자가 되지 말고 편입하는 자가 돼야 한다.

우리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고백과 표현을 정당하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그분께 진지한 삶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대표/발행인 구인본 목사  aki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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