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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목사 ‘故 백남조 장로의 신앙과 삶 기념해야“

‘백남조 기념홀’ 명명 감사예배·현판 제막식 구인본 편집국장l승인2019.08.31l수정2019.09.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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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규 목사

총신대학교(총장:이재서 목사) 사당동 캠퍼스 조성과 대학인가 등 총신대의 초석을 놓은 故 백남조 장로의 헌신을 기려서 총회가 총신대 대강당을 ‘백남조 기념홀’로 명명하는 감사예배와 현판 제막식이 오는 9월 3일 오전 11시 30분 총신대에서 거행된다. 

박성규 목사(부전교회)는 “백남조 장로님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은 총신과 우리 총회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이 후대에도 이어지는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사료되어 제104회 총회에 헌의하여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故 백남조 장로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총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지를 헌납했다. 자신은 판잣집에 살면서 18,000평의 부지를 헌납했다. △부지 헌납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일이지만, 백 장로의 가족들에 따르면 대학인가를 받는 일(1969년)에 부지 대금 정도의 기부를 하는 헌신을 백 장로는 했다. △총신대 초대 재단이사장을 시작으로 제6대 재단이사장까지 연이어서 봉직하는 21년간(1967. 5. 2~1988. 9. 10) 총신대 100년사 편찬위원회, 총신대백년사 화보집을 발간하는 등 정직과 성실로 총신대를 바로 섬겼다. 백 장로는 성지 순례도 마다하고, 회갑·고희 기념식도 못하게 하고 절약하며 총신을 위해 헌신했다. △전 총신대 학장 김희보 박사는 “백 장로는 사업이 어려울 때에도 총신을 위해 헌신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전에 밝혔다. △백 장로는 생전에 매일 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 가정 기도회에 하루도 총신을 빼놓지 않고 기도했다. 그때 정성구 박사와 故 배태준 장로(당시 재단이사회 서기)가 그 기도회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 ‘백남조 기념홀’ 현판

◆인용문

「총신대학교 100년사」에 보면, 그 내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백남조 장로의 공헌은 매우 컸다. 신학교 건축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던 그 즈음 그는 부산 대청동 노진현 목사 댁에서 모인 이사회 중 이사장 노진현 목사에게 학교에 건축 헌금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노진현 목사를 밖으로 불러내 ‘노 목사님, 제가 미력하지만 학교 부지를 마련해 보겠습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당시 부전교회를 시무하던 백 장로는 작은 표백 염색 가공업체인 백흥화학공업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집도 없어 공장 안 판잣집에서 노모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200만원의 거금을 신학교 건축 헌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 후 학교 건립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65년 3월 사당동 부지 18,000평을 백남조 장로 명의로 구입하고….” 총신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 총신대학교백년사, 제 1권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2003), p. 640. 총신대학교 사당동 캠퍼스 건축을 위해 그 당시 노회들이 대부분 헌금한 것이 평균 12만원이었던 것을 보면, 백남조 장로의 헌금 200만원은 대단한 것이었다. 한편 부지 구입 연도는 수정이 필요한 듯하다. 그 이유는 p. 648에 보면, 박형룡 박사의 사당동캠퍼스 기공사에 1965년 3월 22일에 기공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p. 640에 있는 1966년을 필자는 1965년으로 수정했다. 연도가 1965년이 맞는 이유는, 총신대학교 100년사 편찬위원회, 총신대학교백년사 화보집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2003), p. 173에도 1965년 3월 22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1965년 3월 22일 오후 3시 사당동 캠퍼스의 기공예배에 이환수 목사는 이렇게 개회사를 했다. “… 이는 우리 총회와 신학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섬겨온 백남조 장로는 1만여 평의 대지를 준비하여 신학교에 바쳤고,” Ibid., p. 647.

백남조 장로의 전기인 「믿음의 사람 백남조」에 보면, “백남조의 생애에서 가장 획기적인 것은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를 위한 헌신의 사역이다. 총신의 사당동캠퍼스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백남조 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백남조 장로 전기편찬위원회, 믿음의 사람 효암 백남조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1), p. 155.

“이사회가 1964년 총회를 끝낸 후 어느 날 부산 대청동, 당시 이사장 노진현 목사 집에서 모였는데 이 날도 재정 문제가 회제의 중심이 되었다. 백남조는 평소 전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목회자 양성이라 믿고, 이 때 신학교를 위해 뭔가 결심을 해야겠다며 이사장 노 목사를 밖으로 불러내어 옆방으로 안내하였다. ‘노 목사님, 누군가가 신학교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할 텐데 제가 미력하지만 학교 부지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백남조는 당시 부전교회 시무 장로로 있으면서 광목을 표백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거액의 돈을 학교 부지 매입 자금으로 선뜻 내놓겠다고 하니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백 장로는 그 때 집도 없이 공장 안에 있는 조그만 집에 기거하면서 노모를 모시고 내핍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당동 총신 캠퍼스는 이렇게 백 장로가 18,000평을 매입하고 헌납하여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Ibid., pp. 164-165」

◆참고

「(1) 부지 헌납 연도

1) 등기부 증명서에 따르면, 1967년 8월 8일 증여, 1968년 3월 30일 접수로 나옵니다.

2) 《총신대학교 100년사》 p. 640에 따르면, 1966년 3월 백남조 장로 사당동 부지 18,000평 구입, 1967년 5월 2일 재단인가(김인득 장로 석명 광산 수익재산 제공), 1967년 8월 8일 학교법인 총회신학원에 증여, 1968년 3월 30일 학교법인 명의로 등기부 등본에 기재로 나옵니다. 즉 등기부 등본과 일치합니다.

3) 그런데 문제는 《총신대학교 100년사》 p. 646에 따르면, 1965년 3월 22일에 사당동 구 본관 기공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부지 헌납은 1965년 3월 22일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실제 부지 헌납은 1965년이며, 등기부상에 증여는 1967년 8월 8일, 등기부상에 접수는 1968년 3월 3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판에 1965년도에 헌납했다고 기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구인본 편집국장  aki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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