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하 주필

우린 주의 일을 할 때 자원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원하는 일뿐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던 억지로 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말기인 AD.57년경에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짐작되는데 아마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크리스천들을 돕기 위해 모은 성금을 전달하러 가기 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로마서 15:25-27, 고린도전서 16:3-5, 고린도후서 8장).

바울 사도는 그 편지의 말미에 복음을 전하는 중 도움을 입었던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스무명도 넘게 언급하면서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신실한 자매 뵈뵈를 천거하기도 했고,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어 놓았던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헌신을 고마워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던 에베네도를 기억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로마서 16:13절 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도대체 루포는 누구이며, 루포의 어머니는 누구인데 사도바울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가? 루포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으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렀더라.” (막15:21)

루포가 누군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던 날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에서 온 시몬의 아들이 바로 루포였고, 그 구레네 시몬의 아내가 바로 바울이 평생을 어머니처럼 섬겼던 분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체포되어 재판받던 날 구레네 시몬은 아무 생각 없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았다. 그런데 유월절 전날 아주 흥미로운 재판이 열렸고 사형 언도를 받은 한 죄수가 200kg도 더 되는 형틀인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너무 지쳐 자주 넘어졌고, 로마병사는 십자가를 대신 짊어 질 힘 좀 쓰게 생긴 구경꾼을 찾았는데 그때 재수 없이 발탁된 인물이 바로 구레네 시몬이었다.

그가 예수의 십자가를 진 일은 결코 원한일도 아니었고, 자원한 일은 더 더욱 아니었다. 정말 그 많고 많은 군중들 중에서 우연히 선택되어진 정말 재수 없는 일이었다. 성경은 그를 억지로 가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짊어졌던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였다. 그가 흘린 땀도 억지로 흘린 땀방울이었다. 자원도 아니었고, 결코 우쭐대며 한 일도 아니었다. 강제로, 억지로, 자신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환경에 떠밀려 지게 된 십자가였을 뿐이다. 그리고 구레네 시몬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중단되었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그런데 뚱딴지 같이 로마서 16장 바울의 편지 뒷부분에 뜻밖에도 구레네 시몬의 아들인 루포와 그의 어머니 즉 시몬의 아내가 소개되는데 바울이 평생 어머니로 여기고 섬겼던 분이라는 것이다.

미루어 본다면 그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기는 했지만 자기가 짊어졌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구레네 시몬은 유월절 절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 그 청년 예수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을 것이고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아내와 아들들이 수도 없이 듣게 되었는데 훗날 복음의 박해를 피해 로마로 이주해 살다가 그곳에서 예수를 전하는 신실한 선교사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 루포의 어머니는 예수를 섬기는 마음으로 바울을 섬겼던 것으로 보인다.

우린 주의 일을 할 때 기쁨으로 섬기며 스스로 자원하여 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원하는 일뿐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던 억지로 하는 일이나 할 수 없이 하는 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흘린 땀도, 억지로 바친 물질도, 마지못해 하는 헌신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원하면 더욱 좋겠지만, 억지로 라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100배 나은 것이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