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이란 책을 읽어보았다. 한 여성 호스피스 의사가 쓴 글이다. 호스피스 의사로서 자신은 천 번의 죽음을 보았다고. 이것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불행의 근원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자신의 인생 목표였던 경제적 풍요, 지적 우월, 공부 잘하는 자식, 자상한 남편과 부모는 자기 욕심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깨달음도 있었다고. 무엇보다 참 대단해 보였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여 호스피스 의사가 되었으니.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 결핍과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가끔은 내가 말기 암에 걸려 병동에 누워 있는 꿈을 꾼다. 엄청난 고통과 슬픔 속에서 나는 비명을 지를 수도,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다. 가위에 눌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때, 이 악몽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힐 때, 그런 순간에조차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내가 없는 세상에 남겨질 아이들이다. 악몽을 꾸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내가 환자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환자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환자들이 편안히 눈을 감는 순간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고귀한 일을 한다고 추켜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이는 의사라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호스피스를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묵묵히 할 뿐이다.”

책을 읽고 삶을 돌아보았다. 사명감으로 사는지. 사랑과 위로로 목양을 하는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목사로 각인되고 있는지. 열심과 사랑으로 섬기고 있는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은 말한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오늘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극단적인 마음이 들 때, 그럴 때 호스피스 병동을 한번 찾아보라고.

▲ 미시간 토치 레이크 일몰

그렇다.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죽음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음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가까이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며 산다면 삶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쾌락에 취하게 만들어 죽음의 강을 잊게 만든다. 죽음을 기억하자. 메멘토 모리. 어떠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지 말이다. 죽음의 기억은 인간은 겸손하게 만든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인생이라는 웅장한 공연의 커튼이 내려가는 순간 나는 무엇을 뜨겁게 여기면서 육체와 이별하게 될까. 각자에게 그 뜨거움이란 무엇일까. 2005년 2월 나는 이미 죽었다. 교회를 세우려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이후 예수 안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살고 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루하루가 주님이 주신 은총이며 보너스로 여기며 산다. 후회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께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의사 김여환은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이 대못을 박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아픔을 조금이라고 완화하기 위해 힘쓰는 호스피스 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봉사자들이 대단해 보인다. 천사들이다. 이런 천사들 때문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 간다. 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힘들 때 호스피스 병동을 한 번쯤 떠올리는 것은 어떨까 싶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대못과 같은 통증을 느끼고 있을 말기 암 환자들을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실에서 지낼 말기 암 환자들과 가족들을 생각해 본다. 주님의 위로가 충만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