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2005년 2월 15일 시카고에 입성하였다. 거대한 도심을 통과하는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이 거대한 도시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어젯밤에 묵었던 숙소에서 심장마비가 와서 죽다가 살았다. 그분께서 살려주지 않았다면 죽을 뻔하였다. 그렇게 처절한 모습으로, 실패자의 모습으로 시카고에 입성하였다. 담임목사님과 인사를 하고 사택으로 갔다. 그런데 사택이 정말 불편했다. 물이 지하수인데 유황 냄새가 난다. 화장실은 유황이 묻어 색깔이 누렇다. 지하에 정수 시설이 있는데 고장 난 지 오래되었다. 소금으로 정화를 하는데 소금도 없다. 이런 곳에서 2년 반을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난감하다. 쥐도 자주 출현하였다. 쥐덫에 걸린 쥐를 치우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다. 한 집에 세 가정이 살았다. 지하에는 사찰과 시설 담당 목사님 가정 딸이 셋이었다. 1층에는 나이 많은 행정 목사님 한 분. 그리고 2층에 우리 식구. 불편함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조금만 커도 다 들린다. 사생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누구보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 맘속으로 굳은 결심을 하였다. 다시는 실패하지 말자. 실패하면 찾아오는 것은 수치와 불편함뿐이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지하실에 사는 목사님이 지난밤 폭우로 침수된 젖은 이불과 옷들을 잔디밭 위에 놓고 말리는 장면. 그래도 우린 2층에 살았기에 폭우로 침수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 1층은 폭우로 인해 침수되었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같은 목사인데. 그 광경을 보면서 또 다짐했다. 다시는 실패하지 말자. 목회 성공하자. 그렇지 않으면 나도 고생이지만 가족들이 더 고생한다. 그렇게 시카고에서 2009년 10월까지 있다가, 사임하였다.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년간 목회는 쉬었다. 새벽마다 집 근처에 있는 한인 교회에 나가서 엎드려 기도하였다. 광야 여정과 기도는 뗄 수 없다.

▲ 옥광석 목사, 박선동 목사(시카고 사랑의교회 담임), 좌측부터

찬양과 기도로 새벽을 열었다. 교인들이 다 나가고 나면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했다. 찬양을 정말 많이 불렀다. 텅 빈 예배당에서. 그래야 살 수 있었다.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아오리다’ 이 찬양을 수백 번씩 불렀다. 목이 터지도록 불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던킨도너츠에 들렀다. 그곳에서 먹었던 커피와 도너츠를 잊을 수 없다. 집으로 오면 세 아이를 학교에 바래다주었다. 아내와 동네 커피 가게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시간씩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 빵집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 가 보았다. 던킨도너츠 가게는 없어졌고, 빵집은 그대로였다.

▲ 시카고 스카이라인 일출(작품:옥광석 목사)

광야의 여정에 가장 힘이 된 것은 가족이었다. 누구보다 아내의 헌신과 지지였다. 못난 남편을 최고라고 항상 치켜세웠다. 그렇게 하지 말래도 계속 남편을 치켜세웠다. 잘 될 것이라고. 아주 잘 될 것이라고. 놀라운 일을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실 것이라고. 당신 같은 목사 없다고. 최고가 될 것이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그때 아내가 원망하고 비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힘겨운 광야 여정에 배우자가 지지해주면 이보다 더 큰 힘도 없다. 광야 여정은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걸어야 한다.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으로 한 마음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힘겨운 광야 여정을 잘 통과할 수 있다. 그렇게 시카고의 광야를 통과하였다.

▲ 시카고 도심 호수 일출(작품:옥광석 목사)

물도 없고, 빵도 없고, 집도 없었던 그 시절.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던 그 시절. 많은 간증과 기적을 체험하였다. 깊은 성령의 어루만짐도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겸손해지고 치유되고 회복되었다. 감사한 것은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한 모든 기도 제목에 그분께서 놀랍게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카고의 광야를 지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편안한 가운데 다시 찾게 되었다. 광야의 여정은 고통스럽고 힘겹다. 가기 싫어하는 곳이다. 하지만 믿음으로 잘 걸으면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또 다른 축복의 장소다. 광야의 여정일지라도 그분을 신뢰하자. 이 광야를 지나면 상상 이상의 멋진 곳이 기다린다. 이 믿음으로 광야를 걷자. 그분께서 실망하게 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히 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