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광석 목사

이 말은 9.11 당시 뉴욕시장으로 재직했던 줄리아니(R.W.Giuliani) 시장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다. 줄리아니 뉴욕 전 시장은 한때 미국의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재난 중에도 차분하고도 냉정한 지도력을 보여주어 전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그해 인물로 선정된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 배후엔 뼈가 담긴 아버지의 교훈이 있었다. “얻어맞더라도 침착해라!” 아버지는 무명의 복서였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사각의 링에서 얻어맞는 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맞아주는 일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또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이민자인 아버지는 매일 맞는 생활을 하였다. 이 줄리아니의 아버지가 링에서 매일 맞으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 바로 “얻어맞더라도 침착해라”라는 말이었다.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흥건히 두들겨 맞지 않았는가. 글러브를 끼지 않고 시종일관 우리 대신 맞기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분은 줄기찬 인생 강펀치 앞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다. 대단히 침착하셨다.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십자가의 링 위에서 운명하셨다.

▲ 조지워싱튼 브릿지 앞에서 이용걸 목사(필라영생장로교회 원로)와 옥광석 목사, 좌측부터

이래저래 보이지 않는 펀치들이 세차게 밀려온다. 코로나의 3년 쉴 새 없이 날아온 핵주먹 강펀치를 견딘 것이 은혜다. 손해도 무진장 많이 보았지만, 그 덕분에 맷집도 좀 생겼다. 어떤 펀치가 날아오던 정신을 차리고,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는다면 사각의 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들것에 실려 나오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 김득구 선수처럼 죽지는 말아야 한다. 죽으면 미래도 없고 역전도 없다. 단지 나 자신에게 주어진 사각의 링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침착과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 후회 없는 한판 대결을 이어간다면 찬란한 미래가 찾아오지 않을까.

▲ 시카고 도심(옥광석 목사 작품)

위대한 게임은 사각의 링에서 알리, 포먼, 프레이저와 같은 유명 복서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와의 끝없는 싸움이다. 누가 공격해 오던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고 맷집으로 계속 방어해 낼 수 있다면 그 경기의 결과는 예측불허다. 이런 경기는 필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인생의 반전과 새로운 기회는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반드시 찾아온다. 이것 때문에 참고 또 참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여, 얻어맞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자. 그분처럼 침착하자. 반드시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나의 짧은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사각의 링에서 수도 없이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그분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분의 십자가를 붙잡고 다시 일어서서 싸웠다. 허공으로 펀치를 휘둘렀다. 그랬더니 링 위에서 여태껏 버티고 있다. 나에겐 기적이고 역전이었다. 무명의 목사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계속 경기를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 뉴저지의 하늘과 구름(옥광석 목사 작품)

레너드 스윗 교수가 분석한 서구교회 존재 양식 변화가 생각난다. 그는 역사 속에 있었던 서구교회를 네 개의 M으로 분석하였다. 처음에는 서구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던 교회(Missional Church)로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역만을 하는 교회(Ministry Church)로, 그리고 이후에는 체제 유지에만 급급한 교회(Maintenance Church)로 이동하다가, 마침내 박물관 교회(Museum Church)로 전락해 버렸다는 통찰력 있는 진단을 한 적이 있다. 자주 묵상하는 글이다.

지금 내가 섬기는 교회와 한국교회는 어느 시점에 서 있는 것일까? 힘겨운 승부일지라도, 희망이 없어 보이는 승부일지라도 절대로 자포자기 하지 말고 계속해서 승리의 확신하고 신앙과 일터와 목회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펀치를 휘둘러야 한다. 얻어맞더라도, 쓰러지더라도, 1%의 희망이 없어 보여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고 펀치를 휘둘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승부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희망으로 오늘도 힘겨운 각자의 영역 속에서 승리와 확신의 펀치를 멋지게 날려보면 어떨까. 그분처럼 말이다. 사도 바울처럼 말이다. 얻어맞더라도 침착하게. 필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부활의 생명,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후 4:7~12)